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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Jan 31. 2021

무기력증에 갇혔다

코로나, 아빠의 죽음 그리고 백수


무기력증에 갇혔다. 아니네. 스스로 들어갔고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무기력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래 참고하셔서 무기력증이 아닌지 확인해보세요~)


1. 잠을 늦게 자고 잠이 늘었다.

2. 음식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3. 사람 만나는 게 귀찮다.

4. 영상물에 빠졌다.

5. 먹고 자는 것 이외에 내 의지로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



현재 내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책상



'Younger'라는 미드에 갑자기 빠졌다. 한번 시작해서 사일 만에 시즌 6까지 다 봤다. 새벽 2시까지 봤나. 미드 안 볼 때도 12시 이전에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다음날 어차피 늦게 일어나는데 뭐 하러 일찍 자나 싶기도 했다.


집 근처에 사는 쭈니 말고 귀찮아서 약속 안 잡는다. 일월 달력을 보니 쭈니 빼고 유녕이 빼고 회원들 빼고 다른 누군가를 애써 만난 적이 없었다. 만날 때도 옷 고르기가 귀찮아서 운동복 패션이다.


맛있는 음식, 내 기준에서 과자, 닭발, 빵 등등 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끝까지 먹는다. 배가 터질 것 같은데. 멈출 수 없다. 물론 살도 무럭무럭 쪘다.



No way...



그런데! 어제 내 모습 중 가장 싫은 것을 해버렸다. 일 년 정도 안 했던 먹토가 다시 나타났다. 아침 11시쯤에 에그 드롭 샌드위치를 배 빵빵하게 먹고, 오후 1시쯤에 짜파게티를 끓여먹었다. 짜파게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거의 일 년 만에 먹었나 보다. 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입 먹고 아 배부르다 싶었는데. 결국 한 그릇 다 비우고 토했다. 먹으면서 토해야지 싶었다. 그러고 라면 또 부숴 먹고 편의점 택배 부치러 간 김에 티라미슈를 하나 사서 다 먹었다.




이게 말이 되니




글로 어제를 다시 돌아보는데 내가 너무 안쓰럽고 왜 저렇게까지 할까 이해가 안 된다. 그저께 가족들과 재밌게 잘 놀고 행복했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왔는데 마음이 너무 허했다. 마음이 허해서 뭐라도 채워야 할 것 같았다. 폭식과 먹토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받으면 도망가는 곳이 결국 음식이었다. 음식 맛을 즐기면서 먹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 없이 입에 넣고 배를 채우는 행위에 집착하면서 몸을 망가뜨린다.


먹토 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나에게서 벗어나야겠다 다짐했다. 그래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왔나 다시 되돌아봤다. 뭐든 원인부터 알아야 해결하니까!




무기력증은 삼 개월 정도 된 것 같다. 11월쯤 아빠 돌아가시기 전부터 슬금슬금 올라왔다가 생겼다 사라졌다 계속 반복했다. 그러다가 12월부터 2.5단계로 단체 수업을 못하면서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여왔다. 12월 내내 전국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12월 동안 열심히 먹고 놀자~~ 그러면서 나를 방치했다. 노는 순간에는 좋기는 했지만, 다시 돌아갈 곳이 없으니 여행의 기쁨이 예전만큼 크게 차지하지 않았다. 1월부터는 개인수업과 온라인 수업만 틈틈이 하고 있는데 성에 차지 않는다. 수업하면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두 달간 쉬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일상이 완전히 뒤틀려졌다. 언제 단체 수업에 복귀할지 모르니까 그 시간대에 다른 수업을 껴 넣기도 참 애매하다. 미라클 모닝 단독 방도 운영하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해 보지만 잘되지 않는다. 요가로 아침 시작하기로 다짐했는데 별로 아침에 일찍 눈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새벽 3시에 자고 있다.


이렇게 시간 많을 때 공부하고 날 채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데 하기 싫다. 수업할 때는 너무 즐겁다. 하고 나면 기운이 넘친다. 선생님 덕분에 몸에 많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수업을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뒹굴뒹굴한다.


'노마드 요기니'가 되고 싶고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온라인 세상은 광활하고 그 속에서 내 결과 잘 맞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 필터에 가려져 눈빛을 읽을 수 없다. 핸드폰과 노트북은 딱딱하고 차갑다. 난 따뜻한 살을 비비면서 지내고 싶다. 그래서 쓸쓸하다.






쓰다 보니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길 계속 바라고 있다.


더 이상 나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현재를 진짜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여기서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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