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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Jun 28. 2021

음악 포기자가 음악 신동이 되다


성인이 된 이후로 음악을 배운 경험이 없다. 유치원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따라간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까지 조금 배우고, 초중고 때 리코더, 장구, 소고 등을 수업 시간에 조금 익힌 것이 전부이다. 꼬부랑 거리는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고, 화성이 무엇이고 음악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다. 고등학교 내신 점수도 포기했었다. 음악은 어려운 것이고 악기를 멋있게 연주하는 사람들은 음악 관련 전공자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랬던 내가 악기 연주를 한다.


바로 핸드팬이다. 핸드팬은 명상여행자 유녕을 통해서 만났다. 그녀의 연주로 우주선처럼 생긴 악기에서 세상 처음 듣는 소리를 들었다. 은은하면서도 맑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나를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유튜브로 해외 연주자의 영상을 찾아보곤 했는데 소리가 질리지 않고 계속 듣고 싶었다.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소리가 감사하고 감동적이었다. 다른 누군가도 나의 핸드팬 연주를 통해서 같은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ND 핸드팬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있는 번호로 연락했다. 수업 일정과 시간에 관련한 질문을 문자로 보냈다. 선생님은 꼼꼼한 답변과 함께 장문의 글을 덧붙였다.


'수강 결정 전에 핸드팬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갖고 있어요. 편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셔서 악기 소리도 직접 들어보고 선생님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Ps. 저도 핸드팬이 인생 첫 악기였고 그전에 음악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악기인 것 같아요.'


선생님의 문자가 마음에 들었다. 악기 연주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하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3월 7일 가좌동에 위치한 아카데미를 방문했다. 네이버 지도를 보고 도착한 건물 지하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문을 여니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대뜸 핸드팬을 안겨주더니 쳐보라고 했다. 동그라미를 손가락을 눌어봤지만 기대하던 그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손등을 달라고 했다.


"이렇게 힘을 빼고 손끝을 가볍게 대기만 했다가 바로 떼어야 해요."


손등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힘을 빼야 한다' 요가를 배울 때도 수영을 배울 때도 많이 듣는 소리였다. 나는 오랫동안 힘을 주거나 또는 힘을 내면서 살았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애쓰면서 살았다. 힘이 빠질 때면 힘내!라는 말을 듣고 다시 애를 써야 했다. 시험 성적이 안 나오고 취업이 안되고 그럴 때마다 말이다. 힘을 더하는 법을 몇십 년 동안 배웠더니 힘이 넘쳐나나 보다. 악기 연주도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 힘이 바짝 들어갔나 보다.


에라 모르겠다. 마음이 가는 대로 마구 쳤더니 조금씩 소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통똥통똥 우앙~ 이렇게 청아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툭닥툭닥 연주하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손가락이 딩(핸드팬 가장 가운데 볼록 튀어나온 곳)에 닿고 가장 작은 동그라미에서 가장 큰 동그라미까지 왔다 갔다 거리면서 치고 싶은 대로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놀다 보니 3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음악 신동이네! 음악적 감각이 있어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어요."

"네? 제가요?


함께 갔던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넓은 친구들이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었고, 선생님은 영업 멘트인가 싶었다. 음악 점수를 포기하고 영어 성적이나 올리자고 했던 내가 이런 칭찬을 받다니 믿기지 않았다. 아무렴 어떠한가. 핸드팬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데.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음악은 일상을 채우는 공기와 다름없다. 식당, 마트, 술집, 옷 가게, 페스티벌 등등. 음악은 우리를 감싸 안고 있다. 어린 시절 주말 아침 아빠가 틀어놓은 '사계'를 듣고 눈을 떴다. 초중고 때는 매일 아침 교가(ㅋㅋㅋㅋㅋ)를 들으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연애하던 사람과 헤어지면 BMK '꽃 피는 봄이 오면'이나 이영현의 '체념'을 들면서 펑펑 울었다. 친구와 술 한잔 마시면서 흥을 더하고 싶으면 데이비드 게타 리스트를 줄줄이 틀어 놓고 춤을 췄다. 운전할 때는 소녀시대 앨범을 들으면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지금은 집에서 유튜브로 '스타벅스 매장음악'을 깔아놓고 글을 쓰고 있다.


순간의 느낌과 분위기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 음악을 더한다. 그 속에 담긴 사랑, 슬픔, 기쁨, 행복,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공감한다. 그런데 그동안 음악을 들을 뿐 음악으로 말하지 못했다. 왜 글로 말로 몸짓으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 음악을 통해서 표현하지 못했을까.


학창 시절,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음악을 공부했다. 그래야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으니까. 악보대로 열심히 연습하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교과서를 보면서 억지로 음악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달달 외울 뿐. 음악에 나를 담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악보를 들이밀지 않았다. 그냥 가라! 고 했다. 겉으로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비어있는 연주도 많다고 하셨다. 단순해도 너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으니 네가 말하고 싶은 대로 가라! 고 했다. 그렇게 마음대로 핸드팬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잠 깨려고 치고, 점심에 밥 먹고 졸려서 치고, 저녁에 갑자기 감정이 풍부해져서 치고 틈만 나면 쳤다. 매끄럽게 연결이 되는지 상관없이 듣고 싶은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갔다. 혼자 연습하다가 왜인지 모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연습의 조각들이 사 개월 동안 모아지니 나만의 곡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제안으로 작은 무대에 올라서 연주의 기회도 얻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빠져든다고. 악보나 교과서를 펼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펼치는 연주를 했을 뿐이다. 음악을 하고 싶다면 그냥 가라! 단순한 진심이 모아지면 그게 음악이 되고 감동을 준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음악 신동일 지도 모른다.





아래 링크에서 제 연주를 들을 수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tv/CQmkAPonmzd/?utm_medium=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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