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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Jul 17. 2024

우울의 바다에서 만난 글쓰기

너와 나의 연결 고리

 1인 원장으로 일하는 나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이었다. 출근해서 아이들과 정신없이 부대끼다가도 수업이 끝난 후 북적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실에 남으면 외로움이 엄습했다. 쉬는 시간 10분마다 원장님 눈을 피해 강사실에 옹기종기 모여 위로와 공감을 건네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불쾌했던 학부모와의 상담과 수업 시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던 학생 이야기로 서로 맞장구치다 보면 언짢았던 기분이 스르륵 날아가곤 했다. 합을 맞출 동료 하나 없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 보면 운영에 대한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이웃 학원 원장이나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 강사에게 의견을 구할 때도 있지만, 일하는 방식이나 저마다의 상황이 다르니 고민과 해결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의욕에 불타오를 때도 있지만 이렇다 할 새로운 사건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다 보니 자주 매너리즘에 빠졌다. 퇴근 후 늦은 저녁을 먹고 나면 지친 하루를 보상받고 싶었다. 넷플릭스에 접속하여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 늦게 잠들기 일쑤였고 다음 날 아침 엉망진창인 기분으로 눈뜨면 나 홀로라는 생각에 깊은 우울 속으로 침잠하였다.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섬뜩한 기분을 얼른 떨치고 일어나야 하는데 유령처럼 들러붙은 감정은 떨어져 나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드러누운 시간이 마냥 편한 것도 아니었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에서 스마트폰만 연신 만지작거렸다. 그만 일어나자는 수백 번의 다짐과 밀려오는 우울함의 전쟁터가 된 몸을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몸을 일으키기가 싫었다. 결국 출근 시간이 빠듯해질 때까지 누워 있다 겨우 일어나 출근하면 어제의 지루함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외딴섬에 갇혀 기나긴 권태와 따분함에 지쳐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을 즈음 글쓰기 세상을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의미 없는 끄적임이었다. 내 무의식을 지배하며 나를 괴롭히는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몽롱한 의식을 붙들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부터 공책에 적기 시작했다. 마음에 남았던 감정의 찌꺼기와 수면 아래에 잠겨 있던 걱정거리가 둥실둥실 떠올라 지면을 가득 메웠다. 며칠 동안 똑같은 외침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살다 죽을 수는 없다. 완전히 달라진 나로 거듭나고 싶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에게인지 모를 속엣말을 몽땅 털어놓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뿌연 안개 속 보이지 않던 고민거리를 매일 지면에 한가득 쏟아놓고 두 눈으로 직접 보니 두려움은 그저 한 줌의 글일 뿐이었다. 짧게는 한 페이지, 길게는 몇 장씩. 그렇게 한 달 정도 아무런 두서없이 펜 가는 대로 구질구질한 걱정거리를 뱉어내고 있을 때였다. 새벽 기상 커뮤니티에서 글쓰기 모임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글을 써 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글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쓰는 거로 생각했다. 3년 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천 권 정도 읽은 어느 날 갑자기 속에서부터 뭔가를 쓰고 싶은 충동이 일더니 글이 봇물이 되어 터졌다는 김병완 작가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내 평생 도서관에 틀어박힐 일도 없고 무엇보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자신도 없으니 평생 글 쓸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무슨 바람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덜컥 신청했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작은 몸부림이었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른 다양한 분들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모였다.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은 봤지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신기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어도 새벽 기상하며 안면 터온 분들이라 반가웠다.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     

 글을 쓰는 것은 역시 힘들었다. 글이라고는 써 본 적 없으니 무엇을 소재로 정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기를 몇 달, 쓰지 않는데 글솜씨가 늘 리 있느냐는 선생님의 당연한 말씀이 망치가 되어 머리를 때렸다. 아무 말이나 닥치는 대로 매일 한 단락씩 써나갔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기와 같은 글이었다. 묻혀 있던 추억도 끄집어내고 언짢은 일을 곱씹기도 하며 그에 따른 나의 감정을 글로 옮겼다. 즐거웠던 여행과 일상의 행복도 노트북 한글 파일에 하나둘 담기 시작했다. 겨우 몇 줄의 글이 모여 글 한 꼭지가 되어가자 글을 쓰는 행위가 조금씩 즐거워졌다.


 분주한 일상을 살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락 글을 올리는 동료들의 열정과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선생님의 애타는 마음이 새벽을 가득 채웠다. 글 속에 묻어 나는 글쓰기 동료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도 좋았다. 생업으로 바쁜 분들이 짬 내어 연재하는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들의 팬이 되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 수업을 마친 후 고단하여 맥이 풀려 있다가도, 단톡방에 하나둘 올라온 동료들의 단락 글을 스크롤 하고 있노라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던 나의 작은 섬이 이웃한 그들의 섬에 슬쩍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일 되풀이되는 고단한 삶에서도 작은 행복과 의미를 찾아가는 분들을 만나며 고요하기만 하던 나의 섬도 활기차고 분주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출세작인 영화 ‘ET’의 포스터가 떠올랐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과학자 ET와 주인공 소년 엘리엇이 교신하듯 집게손가락을 맞댄 동작은 은하계 너머 미지의 세계와 변방의 작은 행성인 지구를 연결하는 상징이었다. 손가락 너머로 전해지는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다. 새벽을 환한 웃음으로 밝히는 동료들을 향해 ET처럼 손가락을 길게 뻗으며 내가 보내는 신호에 누군가 화답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그렇게 하나, 둘 연결된 우리가 진솔한 글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의 외딴섬에 가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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