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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Sep 04. 2020

'엄마'의 'Mom'이라는 것

05. 16주-20주, 초기를 지나 중기진입





중기로 진입하기 전 14주쯤,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입덧이 없던 내가 왈칵 분수토를 했다. 한두 번 정도이면 모를까. 횟수가 늘어나자 덜컥 겁이 났다. 홀몸이었으면 이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텐데, 뱃속에 '아이'가 있고 나서야 내 몸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당장 남편과 함께 병원 갔다. 다행히 증상 중 설사는 없어서 장염은 아니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 안심이 되었다. 대신 구토를 했으니 수액을 맞고 가라 했다.


근데 수액의 양이 얼마나 많던지.... 병원 침대도 불편하고,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뎌하는 성격이라 다는 안 맞고 집으로 왔다.



#



16주에 진입하며 2차 기형아 검사를 했다. 2차 기형아 검사도 피검사로 진행이 되었다. 다운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 신경관 결손 등의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로 1차 검사와 통합하여 최종적으로 알려준다. 결과는 이상이 있을 시 문자로 통보해주고 이상이 없으면 따로 연락을 주지 않는다 했다.



이 시기에 무료 입체 초음파도 같이 진행했는데 늘 보던 초음파와 달리 형체가 뚜렷하게 보여서 너무 신기했.





흑백으로 진행되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앞모습을 보여줘서 너무 고마웠다. 귀엽게 손을 크로쓰 하고 있는 우리 아기, 남편은 웃으면서 뱃속에서 벌써부터 칼싸움하듯이 놀고 있는 건가?라고 했다 ㅎㅎ 초음파상에서 엄청 활발하다던데 아직 태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날 우리는 성별도 알게 되었. 진료를 보기 전 입체 초음파를 봐주는 무언가가 보인다고 셨다. 그리고 진료를 봤는데, 선생님도 '여기 뭐가 있네요~'라고 힌트 아닌 힌트를 주셨다. 성별을 알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나와 다른 성별이라서 걱정도 되고, 어떻게 키워야지 벌써부터 겁도 났다. 하지만 걱정 사이로 기대감이라는 감정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성별을 알기 전 매일 보는 회사 사람들은 내 뱃 속의 아기가 아들 같다고 했다. 성별이 확정되고 나니 그런 점들이 너무 신기했다.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딸을 예상했다. 회사에는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 많고, 친구들은 아직 임신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니 아버님도 성별을 맞췄다. 아버님의 기적의 논리(?)도 어찌 됐든 간에 결과적으론 맞지 않은가!


나도 16주가 가까워지면서 성별이 궁금했다. 그래서 성별에 관해 많이 찾아봤는데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중국 황실 달력, 미국 성별 사이트, 반지점 테스트, 적채 테스트(적양배추를 우린 물을 가지고 하는 실험), 베이킹소다 테스트, 12주 각도 법 등등... 재미로 몇 개 해 봤는데 이런 건 안 맞오히려 태몽이 았다.


나의 태몽은 뱀 꿈이었는데 뱀 꿈은 남자아기도 될 수 있고, 여자아기도 될 수 있는데 작거나 화려하고 예쁜 무늬, 색깔이 있는 뱀이면 딸이고, 크기가 크고 한 마리일 경우 남자아기라고 했다. 나는 후자였다. 그리고 입덧이 없으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 했고, 음식 중에 국물음식이 많이 당기면 아들이라고 했다. 근데 고기가 당기면 아들, 과일이 당기면 딸이라고 했는데 그건 반대였다. 고기는 꼴도 보기 싫었고, 과일이 엄청나게 당겼다. 그리고 피부가 좋아지면 딸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피부가 엄청 좋아졌는데 아들이었다. 역시 맞는 게 있고 틀린 게 있는 걸로.. ^^


근데 임신을 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의 고나리가 너무 심하다. 우리 아기의 출산예정일이 12월인데 왜 그렇게 내 아기의 출산예정일에 집착하는 걸까?


"12월생은 발달이 느려서 크면서 친구들한테 치이니까 1월생이 훨씬 좋아."


성별이 결정된 후론,


"요새 딸이 대세인데!"

"딸 하나 더 낳아야지!"


가타부타하는 얘기들에 벌써부터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은근 마음도 상하고 말이다.



#



20주를 앞두고 첫 태동을 느꼈다. 뭔가 툭, 하고 배를 건드리는 느낌? 신기하기도 하고, 이 느낌을 혼자만 느끼기 싫어서 한참을 내 배 위에 남편 손을 대고 있었다.


뱃 속의 아가가 점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쯔음, 나와 같은 시기에 임신한 친구의 유산 소식을 들었다. 전날까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다. 단순히 질염 증세가 있어 병원을 다녀왔는데 이상이 없었다 했다. 근데 다음 날 아침 친구에게서 장문의 카톡이 와 있었다.


'배 통증이 심해 병원을 가니 자궁경부가 모두 열려있. 더 이상 손쓸 수 없어서.. 보내줘야 될 것 같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떤 말로든 위로가 될 수 없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른 뒤 몇 시간 후에야 답을 보냈고 친구는 나에게 꼭 건강한 아기 출산하기 바란다며 앞으로 연락이 어려울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임신기간동안 의지하던 친구와 한동안 연락할 수 없다는 속상함, 헤아릴 수 없는 친구의 아픔, 안쓰러움, 안타까움, 슬픔...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 속에서 이기적인 감정 하나가 비집고 들어왔다.



'아가야, 고마워.'



이제 막 태동을 느낄쯔음이었다. 내 배를 톡 건드리기도 하고, 꿀렁이기도 하는 아가를 매만지며 나는 그 순간 이기적이지만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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