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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너 Aug 21. 2021

이야기가 없으면 안 읽어요.

소설이 좋아요.

  소설을 좋아합니다. 이건 호불호의 표현이죠. 다른 말로는 대체가 어렵습니다.


소설이란 장르가 아름답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다는 표현 외에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어려워요.  


 (경이롭고 아름답고 대단한건 '詩'가 오히려..)


 그렇다면 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정말 좋았다-'고 느끼는 소설의 대부분은 줄거리가 매우 간단하게 정리되는 책들이었거든요. 심하면 한 줄로도 정리가 돼요.


 그러니 탄탄한 플롯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도 크게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건이 커지면 피로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소설이란 장르 외의 책은 몇 권 읽어본 일이 없어요. 그것이 스스로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막상 읽고 나면 그런 책들이 더 상식을 풍부하게 해 주고, 뭔가 실생활에 유용한 도움을 줄 것 같은데.

알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굳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책을 읽어댔는데 남은 거라곤 소설 제목(심지어 오래되면 내용은 휘발)과 책 표지가 전부인 것 같기도 하고.


 이동진 평론가님의 블로그를 참 좋아하는데 웃기게도 그분이 추천하는 영화는 보지 않고(보는 눈이 없어서) 대신 추천해 주는 소설은 죄다 찾아서 읽는 편입니다. 그분의 추천은 완벽할 정도로 타율이 좋아요.


 제게 있어 동진리님의 책 추천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는' 독서 지도서 수준입니다. 추천해 준 책마다 너무 재밌어요. 혹은 정말 좋습니다. 읽고 나면 '아...' 하고 여운 남는 그런 책들 있잖아요. 아니면 '와...' 진짜 잘 썼어, 하는 그런 책이요.


 해서 그분이 진행했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듣다가 추천하는 책이 소설일 경우는 꼭 메모해두는 편인데, 그렇게도 좋아하던 동진리께서 이런 얘기를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만 아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위험하다'라고. 그래서 편독이 매우 안 좋은 것이라는 말도 함께 덧붙이셨어요.


 크응.. 동진리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더 뼈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전 정말... 소설이 좋습니다 ㅋㅋ

 

 거기에 쓰인 '좋은 문장' (좋은 내용 말고요.)을 읽는 쾌감이 있어요. '말의 맛'이라고 할까요. 지면 안에 문장들이 층을 이루고 쌓여 있는데 각각이 내구성도 좋은 거예요. 그러다 멀리서 보게 되면 각각이 하나의 작품으로 모이고요. 이런 걸 발견하는 맛이 소설에 있습니다. (물론 詩는 3배 고농축 세제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가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 작품은 '詩'라고 생각하지만, 첨단처럼 정제된 예술은 가끔 좌절감을 주기도 합니다. 난 저걸 향유하지 못한다는. ㅠㅠ 읽고 여운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ㅠㅠ


 그런데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순도 높은 단어로만 이루어진 詩에 비해 좀 더 친절합니다. ㅎㅎ  

그래서 詩는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껌 같고, 소설은 달콤한 몽블랑 빵이나 중독성 있는 과자 같아요.  

 

 아마도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은유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직설적이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이 분야 외에는 파고들지 않는 뚝심(?) 같은 것이 제게 있을 겁니다. 아마 이게 가장 큰 이유일 거예요.  

  

 그리하여 저는 소설이  좋습니다. 언젠가 능력이 닿는다면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좋아하니까요. 심심해도 진한 이야기요. 왜냐하면 제가 그런 소설을 좋아하니까요.


닉네임으로도 쓰고 있는, 정말 정말 좋아하는 '스토너' 같은  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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