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가 브랜드 해킹을 장려하는 이유
#프롤로그 : 이케아를 해킹해주세요
해킹은 우리 일상에서 나쁜 의미로 읽힌다. ‘해킹(Hacking)’이라는 표현이 컴퓨터 범죄의 의미로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킹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해킹도 있다. 글로벌 홈퍼니싱 브랜드 이케아는 자기 브랜드를 해킹하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고 장려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브랜드 해킹’이라고 들어 본 적 있는가? 제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접근해 무언가를 바꾸는 행위, 자신의 입맛에 맞춰 개조하는 행위를 일컬어 ‘브랜드 해킹’이라고 한다. 코카콜라 캔으로 장난감을 만들거나 레고에 LED를 넣는 등 외국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최근 이케아는 유명 산업디자인 ‘톰 딕슨(Tom Dixon)’과 함께 ‘오픈소스(Open Source)소파’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오픈소스 소파의 이름은 어떤 것의 일부가 된다(being part of something)는 뜻의 스웨덴어 ‘디락티그(Delaktig)다. ‘디락티그’는 모양과 용도를 소비자가 쉽게 변경할 수 있는데 40%의 재생 금속으로 제작된 내구성 강한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사용하여 소파를 기본으로 다양하게 변형이 가능한 유연한 구조로 만들었다. 소비자는 원하는 형태와 용도에 맞게 팔걸이나 테이블, 램프 등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는 "과거 이케아 제품이 커버를 바꾸는 수준의 변화가 가능했다면, 이번 실험은 소비자가 가구의 근본적인 기능을 바꿀 수 있는 문을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킹에 무관심했던 이케아가 이제 자신들의 제품을 해킹하는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디락티그 소개 영상 보러가기 = https://youtu.be/vYsH3NCMlD8
이케아의 변화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오픈소스 소파’를 구매한 소비자가 자기 입맛에 맞춰 커스텀마이징한다면, 수없이 많은 새로운 소파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모두 이케아의 콘텐트가 된다. 즉, 브랜드 해킹을 ‘소비자가 브랜드와 관련된 콘텐트를 직접 만드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이케아는 자기 브랜드의 제품을 변경할 권한을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가 만드는 브랜드 관련 콘텐트(=브랜디드 콘텐트)를 얻게 된 것이며, 소비자가 브랜드 관련 콘텐트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다.
#언제까지 브랜드가 만들래? 브랜디드 콘텐트의 NEXT에 대하여
미디어의 권력이 소비자에게 넘어갔다고 하는데도 지금의 마케팅은 소비자가 아닌 브랜드가 주도하여 만들어내는 마케팅이다. 브랜드는 소비자를 콘텐트의 수신자로만 생각한다. 진정한 브랜디드 콘텐트는 소비자가 콘텐트의 발신자, 생산자가 되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을까? 콘텐트를 만드는 주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는 SNS를 통해 주변 소비자들의 제품 리뷰나 댓글을 보고 제품구매를 결정한다. 특히 MCN스타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의 리뷰 영상이나 포스팅은 그 영향력이 기존 미디어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 주관적일 수 있는 ‘브랜드가 만든 콘텐트’보다 객관적인(그렇게 보이는) ‘소비자가 만든 콘텐트’를 더 신뢰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고비용을 들이면서 콘텐트를 만들고 더한 비용을 들여 미디어에 노출해 소비자가 보게 만들고자 애를 쓸 것인가. 이제 브랜드의 역할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있어야 한다.
브랜디드 콘텐트를 대하는 자세를 조금 틀어야 하는 시점이다.
#만들고 싶은 환경, 콘텐트 인프라를 구축하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브랜드의 마케팅적 역할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정부와 닮아야 한다.
앞서 소개했던 이케아, 유튜브의 공통점은 타겟(소비자 또는 창작자)이 자기 브랜드를 통해서 콘텐트를 만들고 싶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었다는 점이다. 경부고속도로는 단순히 도로의 역할을 넘어 수도권과 영남을 잇고 부산항을 잇는 새로운 무역의 기회를 제공했다.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2차, 3차의 가치창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SNS 덕분이라고 ‘방탄소년단’을 기획한 방시혁 대표가 말한 적이 있다.
SNS라는 인프라가 ‘방탄소년단’이라는 새로운 콘텐트 탄생에 기여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AR을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포켓몬고’가 흥행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소비자가 콘텐트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소비자가 콘텐트를 만들고 싶은 환경, ‘콘텐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인프라 구축을 정부에서 했다면, 콘텐트 인프라 구축의 주체는 당연히 브랜드다.
브랜드는 ‘콘텐트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콘텐트 인프라’란 소비자가 지속적으로 우리 브랜드를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일련의 마케팅적 행동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환경'이란 소비자가 주체가 되어 브랜드와 관련된 콘텐트,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만들곤 싶은 환경을 말한다. 이케아가 ‘오픈소스 소파’를 통해 콘텐트를 만들고 싶은 환경을 조성해준 것처럼 말이다. 인기게임 ‘마인크래프트’를 보면, 소비자가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줬을 때 얼마나 상상 이상의 콘텐트가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요즘 시대의 소비자만큼 똑똑하고 창의적인 소비자도 없다.
#콘텐트 인프라는 브랜드가 가진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만들 수 있다
P&G의 CEO 앨런 래플리는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우리의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은 물론 뭔가를 창출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브랜드를 놔줄 수 있어야 함을 배워야만 한다"라고 했는데 ‘브랜드를 놔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이케아처럼 브랜드가 가진 권력(제품을 변경할 권한)을 소비자에게 이양함으로써 콘텐트가 만들어지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왕이다. 안방을 내주는 걸 아까워하면 안 된다. 안방을 내주더라도 안방에서 하는 일은 모두 나(브랜드)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UGC 콘테스트처럼 리워드를 주고 무턱대고 소비자에게 참여하라고 하는 건 안 된다. 만들어오라는 일방적인 접근이 아닌 만들고 싶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안방을 내주고 그 안에 흥미로운 놀거리, 스토리를 제공하여 소비자의 창작욕, 참여욕구를 이끌어내야 한다.
#콘텐트 인프라를 잘 구축한 사례
앞서 소개한 이케아의 ‘오픈소스 소파’처럼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가진 권한을 이양함으로써 소비자가 콘텐트를 만들고 싶게 유도한 사례를 소개한다.
1. 제품 변경의 권한을 부여 = 레고의 ‘마인드스톰’, ‘빌드 위드 크롬’
창의력을 길러주는 대표적인 완구답게 레고는 소비자가 콘텐트를 만들고 싶게 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마인드스톰’은 전기모터와 센서 블록을 조립한 후 컴퓨터 프로그램을 입력해 움직이는 레고인데 출시하자마자 해킹을 당하고 만다. 해커들이 ‘마인드스톰’에 새로운 행동을 덧씌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레고는 해킹범을 고발하는 대신 오히려 프로그램을 공개해 제품 변형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러자 소비자는 경쟁적으로 자신의 창의력을 뽐내기 시작했고 마인드스톰은 100만대가 팔리며 대히트를 기록했다.
‘빌드 위드 크롬’ 캠페인도 소비자가 콘텐트를 만들 수 있도록 장려한 대표적 캠페인이다. 크롬 브라우저에서 레고를 조립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마인크래프트’를 연상하면 쉽다. 소비자들은 기존에 출시된 적이 없는 다양한 형태의 레고를 만들어볼 수 있었고 이를 서로 공유하며 자신들이 만든 콘텐트를 뽐냈다.
2. 브랜드 공간의 권한을 부여 = 밀도의 ‘메시지 빔프로젝터’
줄 서서 먹는 식빵으로 유명한 식빵브랜드 ‘밀도’는 매장 외벽 공간에 소비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매장이 운영되지 않는 저녁부터 그다음 날 아침까지 매장의 위쪽 벽면 공간에 빔프로젝터로 동네 주민들이 신청한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인데, 대학교 합격 소식부터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다는 사연까지 이웃 주민에게 전하고 싶은 주민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지금도 빔프로젝터를 통해 쏘아지고 있다.
3. 문구 작성의 권한을 부여 = 스페셜 패키지 형태의 프로모션
기존 패키지에 적힌 문구를 소비자가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스페셜 패키지 형태의 프로모션도 대표적인 소비자의 창의성을 유발하는 사례다. 빙그레의 바나나맛우유는 제품명에서 자음을 빼고 ‘ㅏㅏㅏ맛 우유’로 리뉴얼 출시하여 사랑해, 반해라, 한잔해 등 소비자의 상상력이 담긴 다양한 콘텐트가 생성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프로모션들에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이다. 공정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있겠지만, 지속성을 가지는 연간 캠페인으로 진행한다면 정기적으로 수많은 콘텐트가 생산되는 ‘콘텐트 금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위에 소개한 세 가지 사례는 소비자에게 브랜드가 가진 권한을 부여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여하고 싶은 동기를 잘 유도했다는 점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 내 신발을 뽐내고 싶은 소비자의 특성을 파고든 것처럼 말이다.
#에필로그 : 소비자가 만드는 브랜디드 콘텐트를 위해
가장 이상적인 마케팅은 소비자가 알아서 브랜드와 관련된 콘텐트를 만들어주는 것이지 않을까?브랜드는 그렇게 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면 된다. 브랜드가 콘텐트를 만드는 방법론이 이슈인데 콘텐트를 만드는 주체에 대한 고민, 소비자가 어떻게 콘텐트를 만들게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아젠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소비자가 콘텐트를 만들게 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