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리에서나 마케터들은 빅데이터를 화두로 삼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빅데이터에 마케팅의 미래가 있다고 하거나 앞으로 소비자 행동에 관한 모든 문제를 빅데이터로 알아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소극적인 형태로 빅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다고 본다. 정교한 타겟 정보를 통해 마케팅 전략수립에 방향이 될 팁을 얻거나 개인 맞춤화된 정보나 경험을 제공하는 등의 부수적 활용 정도로 말이다. 물론 빅데이터를 타겟팅의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적절한 활용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마케팅에 도움을 주는 내부적 정보를 넘어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콘텐트나 캠페인의 메인 소재가 될 수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마케팅 실체를 만들면, 그 자체로 얼마나 큰 마케팅 효과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모든 브랜드가 빅데이터를 잘 내재화시키고 있지만, 이를 소비자의 눈에 띌 수 있도록 하나의 마케팅 소재로 활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마케터가 기존에 활용하던 빅데이터 활용법 외에 빅데이터로 마케팅 실체를 만드는 방법, 즉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의 마케팅적 활용의 더 큰 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보다 2주나 빨리 독감을 예측하는 구글
어느 날 갑자기 구글은 질병통제예방센터보다 자신들이 더 감기 예방을 잘 한다고 떠들고 다녔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했지만, 구글이 말하는 자신들의 논리를 보고 무릎을 탁 칠수 밖에 없었다. 구글은 자신들이 가진 빅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구글은 보통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면 병원이나 약국을 가기 전에 관련 단어를 검색하는 것에 착안하여, 2009년부터 검색 정보와 위치를 기반으로 미국의 감기 바이러스 확산 상황을 알려주는 ‘플루 트렌드’ 서비스를 제공했다. 실제로 감기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기침, 발열, 몸살, 감기약 등 관련 어휘를 검색하는 빈도가 늘어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이를 통해 감기나 독감 검색빈도가 높은 지역을 지도에 표시함으로써 독감의 확산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시간별, 지역별 독감 관련 검색어 빈도를 지도에 표시함으로써 독감을 예보할 수 있었다. 이 방식으로 구글은 2009년 2월 '구글 플루 트렌드(구글 감기예방 서비스)'라는 독감 확산 조기 경보 체계를 미국 보건 당국보다 앞서 마련하였다.
구글은 이 감기예방 서비스를 위해 새롭게 데이터를 수집하지는 않았다. 다만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인사이트있게 해석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 실체를 ‘플루 트렌드’라는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보여줬고, 각종 언론에 자신들의 실체를 알림으로써 혁신적인 IT기업의 이미지를 더 강화할 수 있었다.
구글의 입장에서 혁신적인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위해 수억 이상의 영상 광고를 집행하는 것보다는 플루 트렌드 서비스 하나를 만드는 게 더 마케팅적으로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구글 플루 트렌드를 어떠한 직무가 고안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마케터는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고안해야 하며 소비자에게 빅데이터를 어떻게 매력적인 실체로 보여줄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른 브랜드들도 구글처럼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을까?
#빅데이터는 마케팅 전략 수립을 위해 필요한 부수적인 도구
매거진 ‘디아이투데이’와 모바일 리서치 전문업체 ‘오픈서베이’가 마케팅 담당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자료에 따르면, 빅데이터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과반수의 마케터가 마케팅 업무에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35%가 ‘정교한 타겟팅’이 가능함을 장점으로 뽑았다. 이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뒤를 이었다.
마케터는 빅데이터를 정교한 타겟팅으로 마케팅에 도움을 주는 정보 정도로 인식해 온 것이다.
‘빅데이터 마케팅’을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빅데이터에 의존해 고객의 구매 정보를 분석,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콕 찍어 마케팅하는 이른바 추천 마케팅이다. ‘마이크로 마케팅(Micro Marketing)’이라고도 한다.”라고 정의한다. 고객의 구매 정보 외에도 온라인 검색이력, SNS 활동이력, 위치 정보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고객의 관심사, 성향, 패턴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마이크로 타겟팅이 가능하다. 즉, 마케팅에서의 빅데이터는 타겟팅, 커스텀마이징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비자 눈에 보여야 한다, 빅데이터로 눈에 보이는 마케팅 실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 관점에서 이러한 빅데이터의 마케팅적 활용은 ‘간접 경험’이다. 나에게 타겟팅되어 메시지가 전달되고 나에게 맞춤화된 혜택을 제공하지만, 결과물로서 나에게 전달되는 것이지 타겟팅되는 과정이 나에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브랜드가 빅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 브랜드가 가진 IT역량을 체감하기는 어렵다.
디지털 시대에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어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4차 산업에 맞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 잘 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잘 보이지 않았던 IT역량을 잘 보이게, 빅데이터를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줄 도구(마케팅 소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더 믿는다.
정교한 타겟팅의 용도 외에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콘텐트나 캠페인의 메인 소재로 활용한 사례들은 꽤 많다. 이미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를 인사이트있게 해석하여 소비자가 가치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마케팅 실체’를 만든 기존 사례들을 소개한다. 빅데이터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브랜드에 대한 호감, 충성도를 높인 사례들이다.
A. 메신저 QQ - HOPE NEVER DIES (빅데이터로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주다)
중국에서 어린이 실종사건은 매일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종 아동 중 단기간에 발견되는 아동은 극히 소수다. 이른 시일 내에 아이를 찾지 못한 가족들은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당시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아이를 찾을 확률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 텐센트의 메신저 QQ는 자신들이 보유한 10,000,000명의 얼굴사진 샘플 분석을 통해 어릴 때의 얼굴을 추적하여 성인이 된 모습으로 변환시켜주는, 연령 변화에 따른 추적 안면인식 앱 ‘QQ알러트(QQ ALERT)’를 개발했다. 잃어버린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토대로 5년 뒤, 10년 뒤의 얼굴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QQ알러트’를 통해 총 286건 중 176명이 성공적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텐센트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얼굴사진 샘플)를 인사이트있게 해석하여 중국의 주요 문제 중 하나였던 실종 어린이 문제를 멋지게 해결해주는 실체(QQ알러트)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중국 IT 업계를 대표하는 자신들의 전문성을 뽐낼 수 있었다. 참고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텐센트는 ‘칸 라이언즈 2017’에서 골드를 수상했다.
B. 올란드 은행 – 올란드 지수(Aland Index) (빅데이터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누구나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내가 얼마만큼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핀란드의 올란드 은행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만큼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한 캠페인을 기획했다.
‘올란드 지수’라는 이름의 캠페인으로 옥수수 추출 친환경 소재의 카드를 제작, 배포하고 소비자의 모든 카드사용 내역을 분석하여 자신의 소비가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CO2(이산화탄소) 수치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CO2 배출량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였다. 이 캠페인을 통해 올란드 은행은 약 €380,000의 환경 보호 자금을 유치했고 특히 브랜드 인지도가 308%나 상승하였다.
C. 호주 스니커즈 - 헝거리듬(HUNGERITHM) (빅데이터로 사람들의 심리를 발견해 활용하다)
누구나 배고플 때 화가 나서 불평, 불만을 쏟아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배고플 때 넌 네가 아니야”라는 광고문구로 유명한 스니커즈는 저녁시간 ‘후’보다 ‘전’에 트위터의 분위기가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출하고 배가 고프니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부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호주 스니커즈는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공동으로 흥미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했는데, ‘헝거리듬(Hungerithm)’이란 이름의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트위터 메시지를 분석해 사람들의 ‘불쾌지수’에 따라 스니커즈 가격을 할인해주는 알고리즘이다. SNS상에서 사람들의 코멘트를 분석하고 데이터화하여 불평이나 불만, 안 좋은 기분을 나타내는 코멘트들의 양이 많아질수록 할인이 커지는 것인데 배고파서 화가 날 때, 스니커즈로 행복함을 느끼라는 일종의 유인전략이다. ‘헝거리듬’은 10분마다 트위터 메시지를 분석하여 실시간으로 사이트에 가격을 올렸고 가격에 따라 구매를 유도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5주간의 캠페인 기간 동안 3천만 건 이상의 미디어 노출과 트위터에서 브랜드 멘션이 120% 증가하고 웹사이트 방문객 수도 400% 이상 증가하는 등 상당한 브랜딩 효과를 누렸다.
호주 스니커즈는 빅데이터(트위터 메시지)로 사람들의 심리를 발견하여 불쾌지수에 따라 가격을 할인해주는 알고리즘 실체(헝거리듬 사이트)로 홍보효과를 톡톡히 봤다.
#수집한 걸 해석하고 시각화하여 홍보하라
앞서 소개한 사례들을 정리해보면, 마케팅 실체를 만드는 방법은 4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1. 빅데이터에 대한 인문사회적 해석 (소비자는 감기에 걸리면 감기 관련 키워드로 검색한다)
2.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아젠다 (질병통제예방센터보다 더 빠른 감기 예방) 3.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체 만들기 (플루 트렌드 사이트) 4. 실체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진행 (각종 PR 활동)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고민하는 일을 해왔고, 시각화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마케터는 빅데이터의 마케팅 실체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소개했던 사례 중, 검색 데이터로 감기를 예상한 것이나 배고플 때 기분이 나빠짐을 트위터 메시지 데이터로 예상한 것처럼 빅데이터를 인문사회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데이터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바야흐로 마케터에게 이성적 두뇌와 감성적 가슴을 지닌 '데이터 인문학자'로서 소양이 요구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빅데이터만큼 마케팅 실체를 만들기에 매력적인 소재도 없다
빅데이터로 마케팅 실체를 만든다면 마케팅적으로 활용 가능성(활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소개했던 사례들을 통해 쉽게 체감했을 것이다. USP를 고민해서 영상 광고를 하는 것 보다, 빅데이터를 통한 팩트에서 출발하여 매력적인 실체를 만드는 것이 더 비용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제 마케터라면, 브랜드가 가진 빅데이터를 어떻게 더 멋지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브랜드마다 가진 빅데이터가 다르고, 소비자가 흥미로워할 아젠다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떠한 멋진 마케팅 실체가 나올지 예측이 어려워서 더 기대된다. 기존에 빅데이터를 정교한 타겟팅에 국한되어 활용했다면, 마케팅 전략 수립을 돕는 부수적 도구로만 생각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브랜드가 가진 빅데이터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마케팅 실체를 만들어 소비자와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