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 12회까지를 몰아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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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혁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사랑의 이해』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상수, 수영, 종현, 미경. 네 사람은 지금 사내연애 중이다. 종횡으로 거침없이 교환되는 눈빛과 감정들. 그리고 이어지는 연봉, 집안, 아파트, 자동차……. 누군가에겐 스펙이고 누군가에겐 자격지심의 원천일 자본의 표상에 붙들린 채 교환되지 못하는 진심과 욕망들. 이해(理解)하고 싶지만 이해(利害) 안에 갇힌 네 청춘의 사랑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갈 데 없이 헤맨다.
나는 예전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상당히 진심이었던 것 같다. 학창시설 그리고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단어에는 뭔가 때가 묻지 않고 온전하고 순수하게 존재해야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누군가는 이런 내 생각에 어리석고 세상물정 모른다고 할지 모른다. 맞다. 나도 그걸 이해한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복잡하게 다투는 지금, '사랑'을 순수하게 지키고 싶어 한다면 이런 사람쯤은 하나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내가 느끼는 사랑에 대한 이해다.
설날 연휴 마지막날 처갓집을 가려고 준비를 하다가 부고 문자를 받았다. 회사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선배님의 부친상이었다. 서울에서 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지만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장님께서 종종 아버님이 안 좋으시다는 말씀을 전할 때마다 혹시 부친상이 생기면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연휴기간 내내 집에서 둘째 육아를 하느라 조금 지친 마음도 있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상갓집이 있는 나주까지 기차나 버스 편을 알아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어렵게 차편을 알아보고 서둘러 처갓집을 들러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명절에 기차역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명절 교통지옥을 겪어 본 적 없는 서울 촌놈에게는 정말 생소한 광경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어폰을 끼고 커피 한잔을 사서 나주행 기차를 탔다.
우연하게 불현듯 생긴 나주행이 그리 싫지 않았던 건 나주까지 가는 2시간이 조금은 설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보챔이 없고 며칠전 했던 이삿짐 정리에 잠시 해방되어 나만의 시간을 조용히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2시간이면 드라마나 영화를 온전히 끝낼 수 있었다. 넷플릭스를 켜고 상당히 신중한 선택에 들어갔다. 그냥 웃고 떠들거나 때리고 싸우는 것들에게는 손이 가지 않았다. 50분 남짓의 출퇴근이었으면 쉽게 선택했을 것이다. 뭔가 다른 선택이 필요했다. 한 달 전쯤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접한 '사랑의 이해'에 손가락이 멈췄다. 기차 타기 전 시간이 남아 잠깐 들른 서점에서 원작 소설책 표지를 스치듯 본 것도 같아. 약간의 망설임 끝에 과감히 누르고 기차는 서울역을 출발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은 없었지만 약간은 계획적인 '사랑의 이해'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나주까지 KTX로 2시간, 눈이 엄청 내렸던 나주역에서 선배에게 인사를 드리고 다시 광주로 1시간, 광주에서 서울로 3시간... 순식간에 나의 이해의 여정은 6화를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 드라마를 꽤 분석적으로 보는 편은 아니다. 복선의 이유를 찾고 숨겨진 의미를 파헤친다기보단 배우들의 대사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는 편이다. 약 6시간 동안 온전히 아무런 방해 없이 집중했다. 피곤해서 졸릴 만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드라마는 화려하지 않았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나의 현실과 나의 과거와 멀리 있지 않아서 그런지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자꾸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연출자도 그 시간을 마치 계산한 듯 중간중간의 긴 여백이 있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 속의 긴 여백이 이해의 시간을 주는 듯했다. 그 잠깐동안의 이해의 시간에 '사랑'에 대해서 더없이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내가 겹쳐 보였다.
지금에 와서 보면 나도 많이 때가 묻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변했다기보다는 지금의 세상에 맞춰 살아가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변명하는 편이 편하겠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경험을 돈으로 사고 그것을 내세우고 자랑을 하여 인기를 얻어 다시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다. 젊은이들이 부동산을 공부하고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 흙, 금으로 가치 평가를 매기는 세상이다. 종현이 옥탑방에서 봉지커피를 마실 때 경미는 에스프레소머신으로 아침을 보내는 세상이다. 딸이 가지고 싶어 하는 건 누구보다 빨리 안기고 싶어 하는 아빠가 실제 그렇게 실행에 쉽게 옮길 수 있는 드라마의 상황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 세상의 배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또 나는 어떻게 나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잘 이해시킬 수 있을까?
사회적 배경이 만들어준 차이에서 벌어진 '사랑'의 순수함의 차이는 결국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멀어지고 싶어도 나도 모르는 감정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그게 사랑이다. 상수는 어려운 자신의 환경에서도 온전한 자신의 노력으로 대학에 진학해 은행원이 되었다. 수영도 동생을 잃은 절망감에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지금껏 달려왔다. 정직원과 서비스직이라는 사회적 계급으로 둘은 멀어졌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남주, 여주의 사랑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더 열렬히 이 둘을 응원했던 건 첫 데이트에서 보여준 그 둘의 눈빛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상수의 망설임으로 사회적 계급을 자각한 둘은 점점 더 멀어진다. 둘의 마음이 멀어졌다기 보단 서로 알 수 없는 이해관계의 족쇄가 더 그들을 가깝게 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더 망설여지고 서로 원하지 않는 다른 선택을 한다.
아직 이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폭풍같이 몰아친 사랑의 이해에 대해서 결말과는 상관없이 내 생각을 적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남기지 않으면 또 다른 이해로 변질될 것 같았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람의 마음은 온전히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40년 정도를 살면서 나 자신을 비롯한 내주면의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을 본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이러한 순간순간 깨달음이 있을 때 좀 더 사랑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불안감을 붙잡을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사랑도 훈련하고 익혀야 나와 함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상수와 수영, 미경과 종현 그리고 나 모두가 이제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사랑을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다. 사회적 차이, 주변의 시선을 온전히 벗어던지고 사랑만은 쫒기에는 우리는 너무 지쳐있다. 굴복도 회피도 인정하고 나를 바라보겠지만 결국에는 지금 내 앞의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표현해야 한다.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 남은 4화가 어떻게 전개되던지 12화 동안 내게 주어진 이해의 시간에 또 한 번 좋은 학습이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을 보면서 이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다듬어서 표현하고 이 나의 마음의 움직임을 잘 가꾸는 일, 이 모든 나의 표현이 결국 딸과 아들이 배우는 사랑의 이해의 시작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