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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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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제 Sep 20. 2020

메탈 시계 차는 법

히터 돌아가는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자습시간, 학생 한 명이 쭈뼛거리며 교탁 앞으로 다가온다. 이틀 앞둔 수능을 위해 구매했는지 유명한 저가 액세서리 브랜드의 메탈 시계를 손에 들고 있다.

ㅡ 저... 선생님 혹시 이거 어떻게 차는지 아세요?

혹시 사회문화 질문이라도 하려나 생각했던 것도 잠시, 뜬금없는 질문에 미소가 지어졌다. 학생으로부터 시계를 받아 들고 시계의 메탈 체인을 푸는 것부터 시계 차는 방법을 설명했다.

ㅡ 이 부분을 요렇게 넘기면 이게 풀어져. 그다음에 팔에 감고 다시 아까 그 구멍으로 넣어서... 이렇게 끼면 돼.

고등학교 3학년에게 시계 차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모양이라니. 똑똑하다고 소문난 애들이 잔뜩 모인 고등학교이지만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애들은 애들이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쪽 손으로 헤매고 있는 학생의 손에서 시계를 뺏어 학생의 팔목에 시계를 둘렀다.

ㅡ 설마... 안 맞는 거 아니에요?
생각보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계 체인을 보며 학생이 물었다.


ㅡ아니야. 이 정도로 둘러졌으면 체인 채우면 딱 맞을 거야.

실제로 그랬다. 실은 조금 더 여유가 있었어도 좋을 법하게 정말 꼭 감겼다.

ㅡ 아, 그렇구나. 제가 이렇게 생긴 시계를 처음 차 봐서.. 감사합니다.


이 상황이 뭐라고 괜히 마음이 짠했다. 나도 겪었던, 견뎠던 시간이기에 옆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해줄 수 있는 게 메탈 시계 차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밖에 없으니. 자습을 하고 있는 학생을 흘끗 훔쳐보는데 모의고사를 푸는 손목에 꼭 감긴 메탈 시계가 약간 어색하기도 한 게 참 귀여웠다.


(2018년 11월 13일 교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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