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는 학생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하고 있으면 학생들이 조기 입소증을 끊어 달라며 하나둘 찾아오곤 한다. 오늘은 여학생 다섯 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낌새가 이미 무언갈 부탁하려는 사람들임에 확실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엔 ‘조기 입소증 좀 끊어주세요~'라고 쓰여있다. 아니나 다를까,
ㅡ 선생니임~ 조기 입소증 좀 끊어주세요~
수업시간에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애교 섞인 말투로 총대를 멘 학생이 먼저 말을 건넸다. 어디서 났는지 다섯 명 모두 과자 박스를 품에 한가득 가득 안고 있었다. 총대를 멘 학생의 부탁이 끝나자마자 무리 중 한 명이 갑자기 품에 안고 있던 과자 박스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ㅡ선생님 고래밥 좀 드실래요?
이내 고래밥 두 개가 내 책상 위에 슬쩍 올려졌다.
ㅡ벌써부터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워가지고~
괜히 핀잔 주는 투로 장난을 쳤더니 다섯 명 모두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까르르 웃어댔다. 사람을 기분 좋아지게 하는 웃음이었다.
ㅡ왜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이유나 들어보자!
별다른 구실을 만들어오진 못한 모양이었다. 다섯 명이 동시에 뭐라고 왕왕대기만 할 뿐 전달되는 메시지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종의 전략이었나 싶다. 그러다 그중 한 명이 대뜸
ㅡ 선생님! 근데 왜 그런 걸 검색해요?
하며 내 노트북 화면에 떠있는 포털 검색창을 가리켰다. 다른 학생들도 뭔데, 뭔데? 하며 순식간에 열 개의 눈동자가 내 노트북 화면으로 쏠렸다. 순간 당황하며 노트북 검색창을 확인했다.
'바나나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라는 검색어가 초록 검색창에 입력되어 있었다. 조기 입소증을 끊으러 여학생 무리가 오기 좀 전에, 어떤 학생이 한 손에 다 먹고 난 바나나 껍질을 들고 오더니
ㅡ선생님 이건 어디다 버려야 해요?라고 물어보기에 검색해 보던 참이었다.
ㅡ음, 음식물 쓰레기인지 아닌지 구분하려면 돼지가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 따져보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거든~ 돼지가 먹을 수 있으면 음식물 쓰레기이고, 돼지가 못 먹으면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래. 근데 내가 돼지가 바나나 껍질을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준이잖아?
하다 결국 검색해본 것이다. 검색 결과 돼지는 바나나 껍질도 먹을 수 있었고, 그리하여 바나나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로 판명 났다. 교실 쓰레기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수 없으니 내일까지 보관해두었다가 식당 잔반 처리통에 바나나 껍질을 버려야 할 번거로움을 사게 된 학생은 뾰로통해 돌아섰다. 바나나 껍질 버리는 것 하나 가지고 저렇게 고민하는 모양이라니ㅠ 너무 귀여웠다.
조기 입소 사유를 묻자 내 노트북 검색창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학생들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으려 했지만, 몇 마디가 더 오간 후 결국 조기 입소증 확인자 사인을 해주게 되었다. 아까 학생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고래밥 두 개가 눈에 띄어 물었다.
ㅡ 고래밥 정말 내가 먹어?
ㅡ 더 드릴까요 쌤? 많아요!!
하며 품에 안은 과자들을 뒤적였다. 목적도 달성했겠다 마음이 고래밥 두 개보단 더 후해져서였을까? 인심을 부리는 아이들을 됐다고, 돌려보냈다. 결국 조기 입소증을 받아 들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고 있었는데 몇몇이 다시 뒤돌아보며 인사를 건넸다.
ㅡ선생님 퇴근하고 집에 조심히 가세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걷기엔 이미 많이 추워진 날씨지만 오늘 퇴근길에는 고래밥을 먹으면서 가야겠다.
(2018년 10월 31일 교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