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만 따지면 썩 좋진 않은 <마스크걸>
<마스크걸>은 시리즈 부문에서 한국과 타일랜드, 즉 태국에서 1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여전히 <하트 오브 스톤>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스크걸>을 안 보는 국가들은 대부분 <뎁 & 허드>를 보고 있습니다. 조니 뎁과 엠버 허드의 이혼 스캔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죠. 해당 다큐는 제가 아직 보진 않았는데, 감상하는대로 후기를 남기겠습니다.
마스크걸을 연출한 김용훈(사진은 마리끌레르)
마스크걸을 감독한 사람은 김용훈입니다. 김용훈은 81년 11월 22일에 태어났고, 국민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데뷔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로 했는데, 이 영화는 2020년에 개봉됐습니다. 김용훈의 커리어는 상당히 독특합니다. 원래는 직장인이었습니다. CJ ENM에서 홍보, 투자, 제작팀 등에서 일을 했으나, 연출에 꿈을 품고 퇴사를 합니다(조선일보 주의). 그리고 39세가 되는 때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라는 작품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하게 되죠. 영화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서 유망주 감독으로 꼽히게 됩니다.
오마주한 작품들
오프닉 크레딧은 제가 최근에 본 작품들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잘 만들었더군요. 여러 추상화 거장들의 작품들을 많이 오마주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드쪽에서는 <Mad Men>을 오마주했더군요. '부'를 추구하다가 추락하는 한 인물의 삶을 다루는 <매드맨>의 오프닝 크레딧에서는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한 명의 사람 그림자가 보여지는데, <마스크걸> 오프닝에서는 '미모'를 추구하다가 추락하는 한 명의 사람 역시 같은 방향으로-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매드맨>이 과거를 배경으로 삼고 <마스크걸> 역시 복고를 다룬다는 점에서 통하고, 제목이 '맨'이나 걸 같은 남성과 여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통하기도 하죠. 실제로 <매드맨>은 60년대 광고업계의 남성들이 주인공이자 주제이고, <마스크걸> 역시 과거과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주인공이자 주제입니다.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추락해가는지 다루다는 점에서, 이들의 추락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통합니다.
3.2.1 다만 <마스크걸>의 테마는 타락 혹은 추락이라기보다는, 얼굴 따위 때문에 삶이 휘청이는 여성들의 삶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보시면, "여적여"를 보기 좋게 까내리는 장면도 있고, 여성들의 연대가 나타나는 장면들도 많이 보입니다.
(이 다음부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원초적 본능>은 흔히 페미니즘 영화로 분류되지는 않습니다. 스릴러 영화로 분류되고는 하죠. 하지만, 남성과 남성 권력을 보기좋게 찢어발기고 발 아래에서 손쉽게 가지고 노는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무관하다다고 주장할 수 있는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원초적 본능>의 주인공은 자신과 섹스하려는 남성들을 살인하고는 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무기는 아이스픽입니다. 얼음을 깨는 도구죠. 어디에나 쉽게 숨길 수 있고, 남성들이 취약할 때 한 두방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효과적인 무기입니다.
<원초적 본능>의 주인공은 상대의 위에 올라섰을 때, 즉, 상위 자세를 취하면서 섹스를 하는 도중에 남성을 살인합니다. 상위 체위에 대해선 제가 글을 상당히 많이 썼는데, 섹스에 있어서 여성이 상위에 있다는 건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자세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도기 스타일로-강아지 스타일로 남성이 여성의 엉덩이를 잡고 섹스를 하는 체위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자세죠. <원초적 본능>에선 이 두 자세가 모두 나오는데, 남성 주인공이 애인을 강간하다시피 섹스를 할 때는 도기 스타일이, 남성 주인공이 여성 주인공-샤론 스톤과 섹스를 할 때는 침대에 눕혀져서 상위 체위를 당합니다. 이때 그가 죽임을 당할지 말지는 영화의 중요한 요소죠. 명작이니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는 샤론 스톤의 각선미만으로 이름을 날리기에는 워낙 아까운 작품입니다.
<마스크걸>에서 주인공 김모미가 사용하는 무기도 <원초적 본능>의 아이스픽 같은 무기입니다. 그리고 상위 체위를 할 때 주인공 여성은 주인공 남성을 아이스픽-비녀로 목을 뚫어 죽여버리죠. 이 어찌, 오마주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네까.
여성 간의 연대
이 드라마의 등장하는 모습 남성들은-<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박보영의 표현을 빌리자면-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하죠. 주인공은 살인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얼굴을 고치지만 그 고친 얼굴로 할 수 있는 일 역시 여성을 성적으로 보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직장에서 일할 때조차도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고려되었으니까요. 주인공이 꿈꾸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이었지만, 항상 도달하는 곳은 그런 곳 뿐이었습니다. 그는 춤이나 노래가 좋아서 공연을 펼쳤지만, 관객들은 춤과 노래보다는 그의 다른 것을 욕망했죠. 그렇기에 여성들은 연대합니다. 자신들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함께 죽이고, 함께 시체를 은닉하는 식이죠.
그렇기에 이 드라마에서 일종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김경자는 여성들이 생존하기 위해 행했던 일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콜레트럴 데미지, 부차적인 피해입니다. 감독은 여성의 적은 결국 여성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장면을 배치한 뒤에 "뻥이었지롱"하며 관객을 놀리죠. 여성들이 생존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일들이 때로는 여성에게 피해를 준다는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김경자라는 인물을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굳이 김경자는 여성으로 둘 필요는 없어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하면 너무 드라마가 여성 대 남성 구도로 짜여질 수도 있고, 극이 단조로워질 수도 있끼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배우-김경자를 연기한 염혜란 배우
염혜란 배우는 <마스크걸>에서 보인 호연으로 2023년이나 2024년에 상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우조연상은 싹쓸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감독은 연출상과 각본상을 노려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올해의 한국 드라마로 꼽을 생각입니다. 경쟁작이 딱히 보이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