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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Oct 09. 2023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조만간 돌아가실 거란 걸 가족들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죽음은 급작스럽게 나타나는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시간에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돌아가셨죠. 그는 부산에 있는 요양 병원에 계셨고, 숨이 한 두 시간 남아있는 시점에 연락을 받은 서울에 사는 우리 가족은 임종을 지키러 가지 못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모의 동생' 가족은 '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 기간에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가는 바람에 임종을 지키러 갈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식사 한 끼 하고, 호텔에 체크인 하고 짐을 풀려는 찰나에 '연락'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 티켓을 예약했죠. 이거 때문에 어머니는 지금도 죄스러워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면서요. 저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숨이라 생각안하셨을 거다, 그냥 또 한 숨 자는 그런 느낌으로 주무시다가 가셨을 거다, 임종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다는 인지는 못하셨을 거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탄 튀 새벽에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요양 병원 측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빨리 데려가라고 압박을 해대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장례 지도사'를 통해 할머니의 신체를 요양 병원에서 장례식장이 있는 병원으로 옮겼죠. 이때까지 우린 서울에 있었습니다. 해서, 부산에 도착하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영이 떠난 시신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얼굴을 만지며 서럽게 우시더군요. 저도 여러번 울컥했지만 할매 얼굴 몇 번 만져주고 좋은 곳에 가라고 말씀 전해드렸습니다. 저는 장례식장에 아무도 없을 때 홀로 할머니에게 절을 할 때, 영정 사진을 운반할 때 많이 울었습니다. 정말 마지막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슬프더군요. 신앙심이 깊으셨으니 그쪽 세계의 천국으로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이번이 두번째인데, 최근에 이사를 하고 나서-이삿날에 돌아가시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저의 수많은 짐을 감당하다가 장례식장의 할머니를 마주하니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할머니는 저를 정말 사랑해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우리 엄마를 제일 사랑했거나 저를 제일 사랑하셨죠. 제가 넘버 투에서 넘버 원은 됐을 겁니다. 저만 보면 엄청나게 반겨해주셨던 분이라, 오랜만에 뵙기만 하면 저는 자괴감에 휩쌓였습니다.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던 저를 반성하게 됐기 때문이죠. 저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었던 건가, 했던 겁니다. 그런 분이 돌아가셔서, 앞으로는 좀 더 빡세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의미있게 남길 수 있는 건 글과 영상 정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구요.


또 하나는 느낀 건 죽을 때는 가져갈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겁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피규어도 가져갈 수 없고, 블루레이도 가져갈 수가 없더군요. 결국 자손들에게 맡겨야 하는데, 제 자식들이 저랑 같은 취향이나 취미가 없다면, 제 피규어나 블루레이는 제가 죽음과 동시에 무쓸모한-부피만 차지하는 뭔가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제 자식들은 제 피규어를 제 값도 받지 못하고 헐값에 당근질을 해대겠죠. 죽여버릴라. 최소한의 프리미엄은 챙기면서 팔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니면, 제가 죽기 전에 어떻게든 제 자식들을 씹덕으로 만들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건이 많아지면서 움직임도 둔해졌습니다. 저는 제 짐이 많기 때문에 좁은 곳으로 자취를 하러 갈 수도 없습니다. 물건이 많기 때문에 무작정 움직일 수가 없는 거죠.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모든 짐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그래서 요즘에는 피규어나 블루레이들 중에 흥미가 없는 것들은 팔아치우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삶이 한층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로운 피규어나 블루레이들도 예전만큼 사고 있지 않아서 허접한 연봉에도 불구하고 돈을 한푼 두푼 모으고 있기도 하죠. 만화책도 웬만하면 e-Book으로 사서 읽고 정말 오랫동안 간직할 것 같은 책만 종이책으로 사서 읽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피규어나 블루레이나 책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될 지경에 이르고 있죠. 넷플릭스에는 새로운 컨텐츠들이 계속 올라오는데, 전 주문한 블루에이들 중에 뜯지 않은 것들도 한 다발 있습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인데, 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하며 다시 제정신을 차린 느낌입니다. <샌드맨>을 읽고 있는 요즘입니다. 넷플릭스로 드라마화도 된 작품인데, 오래 전에 샀지만 이번에야 뜯어서 읽고 있죠. 집에 있는 것들을 빠르게 소비해볼 생각입니다. '나중에 볼 것'에 매진하는 건 이제 그만해야겠어요. 집에 안 읽고 안 본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려 합니다. 할머니도 그러길 바라실 것 같고.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성경 읽으며 시간 잘 보내고 있으시길,

안녕,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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