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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Jun 19. 2022

미술관 옆 동물원

반대가 끌리는 이유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엔딩이 결혼이 아닌, 파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들이 유독 잔상에 남는다. 이를테면, [결혼 이야기], [우리도 사랑일까]와 같은 사랑의 질곡을 다룬 작품이 좋았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서 괴롭고 힘들었다.라는 이면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9년마다 제작한, 비포 시리즈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형태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비포 미드나잇까지 보고 나서, 이 영화는 정말 웰메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장면에서 [이혼한 전처와 낳은] 첫 아이를 배웅하는, 늙어버린 에단호크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극 중, 비포 선라이즈에서 청년이었던 제시는 미드나잇에서 폭삭 늙은 자신에게 셀프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너가 이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별개로, 수채화 같은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90년대 로맨스 영화인 [미술관 옆 동물원]을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세기말 감성인가, 수채화 같은 로맨스에 빠져든다. 그리고, 심은하는 언제 봐도 예쁘다. 내 기준에는 심은하가 여배우 중에 탑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 

[정靜적이거나 동動적이거나]


 춘희(심은하)는 결혼식 비디오를 촬영해주는 일을 한다.  대통령 보좌관(안성기)을 짝사랑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말년에 휴가 나온, 군인인 철수(이성재)가 춘희의 바운더리에 침범한다. 이유인즉슨, 군대가 있을 동안, 여자 친구는 다른 집으로 이사했고, 그 집에 춘희가 이사 왔다. 어렵사리 전 여친과 연락이 닿고, 철수와 춘희는 함께 길을 나선다.

출처_씨네 21
"너 맨날 짝사랑만 하지?”
“네가 어떻게 알아?(깜놀)


"이렇게 하면, 다 의미가 있어 보여"





 


철수는 다시 만나자고 애원하지만, 전 여친인, 다혜(송선미)는 이미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매몰차게 거절한다.  

춘희는 두 사람의 이별을 관전하면서, 서로 사이좋게 맞담배 하라고 재떨이 놓아주는 등 사려 깊은 행동을 보인다.





전 여친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철수는 차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미술관(국현미)으로 가는 걸까? 동물원(서울대공원)을 가는 걸까?

두 사람은 갈림길에 서 있다. 춘희는 미술관을 향하고, 철수는 동물원으로 향하면서 각자의 길을 간다. 둘은 미술관과 동물원이라는 장소만큼이나 성격과 기호가 다르다. 


사랑을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하는 춘희와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표현하는 철수,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라고 말하는 춘희와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핀잔을 주는 철수,



철수는 비 오는 창가에서 실연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있다. 춘희는 뒤에서 책을 읽어준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입장으로 들어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건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쩌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듯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


"그만해... 나 아무렇지 않아"


"그래, 아무렇지 않아야지. 그녀가 행복할 수 있다면, 너한테도 기쁜 일 아니겠니? 네가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말이야. 안구뤠~? (얄밉)  만약, 네가 다혜 씨를 보내주지 못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야. 결국 넌 상대방을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에 빠진 너의 감정을 사랑한 거지. "


"넌 언제나 사랑을 머릿속으로만 하지? 그게 다라고 여기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으니까, 언제나 그 모양인 거야" 이어서 "네가 그래서 허구한 날 시나리오가 당선되지 못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어?”이어서” 아마 네가 읽은 시가 아픔으로 다가온다면, 그땐 사랑을 알게 될 거야"





작중 인물로 보좌관을 상상하는 춘희에게,

"너 그거 병이지? 너를 안 좋아할 것 같은 놈들만 골라서 짝사랑하는 거"

"약 올려도 상관없어"

"너 그 사람 왜 그렇게 좋아하는데?"

"나와 비슷할 것 같아서(헤벌쭉)"

"남의 결혼식만 쫓아다니는 거? 너 그러지 말고 직접 말을 걸어봐. 사귀자고, "


"나이를 허투루 먹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항상 몇 년 뒤의 내 나이를 생각하면 끔찍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면 담담할 수 있는 건, 나이를 한 살씩 먹어서인가 봐. 그럼 그다음 나이가 그렇게 낯설지 않아”


철수가 핀잔을 준다.

"넌 좀 철이 덜 든 것 같아. 옛날 같으면 네 나이에 "

춘희가 말 자르고 대답한다.

"평균수명이 길어졌으니까. 모두 철도 그만큼 늦게 드는 거야"






반대가 끌리는 이유


 과천에 나란히 서있는 국현미와 서울대공원을 바라보다가, 모티브가 떠올라서 작품이 탄생했다고 한다. 심은하는 너무 예쁘고, 대사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섹스 강조하는 철수와 안갯속에서 사랑을 찾는 춘희를 보다 보니까, 열정과 냉정, 본능과 이성을 오갔던 막 학기가 생각난다. 생물학적인 성 지식을 다뤘던 수업과 사회학 관점으로 다루는 사랑 수업을 동시에 들었던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액자, 모니터, 창틀 등 영화 속에 수많은 프레임이 등장하고, 그 속에 인물이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춘희는 손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그 틀에 순간을 간직하는 취미가 있다.

입장 바꿔서, 춘희는 동물원을 가고 철수는 미술관을 가면서,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로 영화는 끝난다. 시종일관 귀엽다.




 

 어느 날, 초록색 기포가 올라오는 탄산을 바라보며, 칵테일을 마시는 BAR에 들렀다. 수렵채집 시대의 동굴 속 여인들처럼, 그 BAR를 동굴 삼아서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우리는 산도 좋고 물도 좋은 곳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철학자들은 사랑의 감동에 냉담했다. 우리가 낭만이라고 부르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인색했다. 이성적이지 않은 뇌의 화학작용에 기인한 행동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사랑이라는 가치는 가장 신중해야 하는 일에도 수시로 훼방을 놓기 때문이다. 나를 구원해 줄 것만 같던 그/그녀가 나를 파괴하러 온 사탄이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우리는 일상에서도 이런 사례를 수시로 목격하거나 맞닥뜨린다. 좋다고 난리를 치면서 SNS에 게재하던 커플이, 지리멸렬하게 끝이 난다. 혹은, 결혼하지 말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회사 상사나 어르신들을 만난다.


쇼펜하우어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풀었다. 인간은 생에 대한 의지가 있다. 곧,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번식이다. 번식은 생존이다. 인간 존재는 내부에 고유한, 살아남고 싶고 번식하고 싶어 하는 본능적 욕구로 정의된다. 우리가 어린 아기에게서 감동받는 기쁨은 생에 대한 의지 때문이다.

'왜 하필 그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사람, 어떤 특정한 상대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마음대로 모든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건강한 아이를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의지는 우리로 하여금 아름답고 지적인 후손을 가질 기회를 높여줄 사람에게로 향한다. 우리 부모들이 구애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매를 타고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생에 대한 의지는 자신의 결함을 바로잡아줄 사람 쪽으로 유도한다. 자신의 조건보다 더 나은 조건의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유전자를 원한다. 애석하게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삼자인 자식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운명을 볼모로 사랑이라는 허상에 내맡긴다. 무의식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인식하고 의식할 수 없으며, 걷잡을 수 없이 끌린다. 그래서 결혼은 성공적일 수 없다고 전한다. 개인적인 행복과 건강한 아이의 출산은 근본적으로 상충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것이 그 두 가지 프로젝트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친구로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과 결혼이라는 제도에 운명을 맡긴다.


이런 비참한 사랑의 철학을 설파하면서, 그의 철학은 사랑을 구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첫 번째,  좋아하는 상대로부터 거부당할 경우에 위안이 된다. 자신의 존재가 거부당하거나 버림받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위안이 된다. 우리는 인생을 한 시간으로 봤을 때, 단 1초에도 지나지 않는 환상과 희망을 품은 결과로 얻은 좌절감과 낭패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로 하여금 2세를 낳아 기르도록 몰아붙일 만큼 막강했던 그 열정이었다는 점을 인식하면 지극히 당연한 상실감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거부당한 데 따르는 상처가 너무 깊다는 사실에 충격받는 것은 다시 말하면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수반되는 숭고함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두 번째, 우리는 본래부터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성격도 괜찮고, 얼굴도 그럭저럭 괜찮다. 둘의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사람과 인연을 맺어서는 균형 잡힌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미워할 이유가 없다. 당신은 언제가 당신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우리는 자신을 거부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방법을 될 수 있는 한 일찍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약속할 만큼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툴게나마 알려주려고 노력할 때, 그 사람은 생에 대한 의지에 따른, 무의식적인 판단을 지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한 번 더 강조한다. 결혼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아이의 출산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그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거절에 담긴, 자연의 명령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 인식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연인으로부터 행복했을지 몰라도 자연은 행복하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는 이유이다. _ 알랭 드 보통_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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