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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Feb 06. 2020

다시는 복강경 수술을 우습게 보지 마라!

이야기 8. 병상일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수술의 기억.

행여 이 기억을 잊고 내가 또 몸에 안 좋은 거 먹고, 운동 안 하고, 또 아플 일 만들까 봐 적어놓은 병상일기입니다.


Day1. 입원하는 날(a.k.a. 수술 전날)

입원은 저녁 6시에서 8시까지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입원을 하면 그 순간부터 금식 시작.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고 나면 아마도 가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금식할 테니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자는 마음으로 저녁을 양껏 먹고 입원할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쓰긴 했지만 사실 나는 병원에서 침구, 입원복이 제공될 뿐 아니라 수술 후 실밥을 푸를 때까지 샤워나 머리 감기도 수월하지 않을 예정이라 짐이 별로 없었다. 뭘 잘 먹지도 못할 테니 간식을 쌀일도 없고.

다만 다인실의 소음과 빛을 막아줄 귀마개와 안대, 그리고 혹시 모를 수술 후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밤을 위해 책을 몇 권 챙겼다. 

반면 나의 보호자로 함께 병원생활을 보낼 엄마는 짐이 많았다. 보호자는 침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베개와 이불, 세면도구와 간단히 먹을 간식들, 지루한 병원 생활을 견디게 해 줄 아이패드도 챙겼다. 갈아입을 옷과 손 소독제와 물티슈, 종이컵, 여분의 봉투 등 엄마는 한참이나 짐을 챙겼다.

집을 나서며 양손 가득 짐을 든 것이 꼭 여행 가는 것 같다며 농담을 했지만 마음은 꽤나 무거웠다. 당시에는 복강경 수술 자체를 굉장히 가볍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애 처음으로 입원+수술 콤보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불안한 떨림으로 느껴졌다.

여성병원인 특성 탓에 아빠는 엄마와 나를 병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몇 번이나 아빠에게 아침에는 뭐 먹고 점심은 어떻게 하고 퇴근해서는 뭘 먹어라 당부하셨고 아빠는 큰소리치시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입원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빠는 우리가 병원에 있는 동안 라면과 바깥 음식만 드신 걸로 드러났다.


저녁 8시의 병원은 낯설었다. 출입구에 불이 꺼져있었고 보조 출입구만 열려있었으며 무엇보다 접수 데스크가 닫혀있었다. 평소 2층에서 접수를 받았었는데 입원 환자를 위한 접수 데스크는 8층에 열려있었다. 

기존에 먹고 있는 약은 없는지 혈액형은 무엇인지 가족력은 어떤 것이 있는지 진료받은 의사분은 누구였는지 등등 많은 것을 물어봤는데 정신없는 와중에 너무 많은 것을 물으니 당황스러웠다. 링거를 맞기 위한 주사를 놓고(두 번이나 잘못 찔러서 팔뚝에 세 개의 구멍을 낸 후에야 바늘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내 자리는 양쪽에 침대가 놓여있는 가운데 자리였는데, 전신 마취 수술 후 카(맞나?)에 실려서 입원실로 돌아오는데 카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중앙뿐이라 이곳만 가능하다고 하셨다.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그래도 뭐 별 다른 수는 없다만) 다행히 입원하는 내내 양쪽 침대가 다 찬 적은 없어서 그리 답답하지는 않았다.  

9시쯤 병실이 소등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웠다. 링거가 꽂혀있는 팔이 영 불편하고 뻐근해서인지 다른 침대에서 들리는 부스럭 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내일 수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수술은 내일 오전 11시. 수술 잘 받고 빨리 회복하려면 빨리 자야지.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한 시간쯤 잤을 까. 병실 불이 환하게 켜졌다. 혈압을 재고, 링거를 교체했다. 

우리 병실에 있던 환자가 4명이었는데 그곳에는 산모도 있고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사람도 있으니 모두 후조치 내용이 달랐다. 그 말인즉슨, 간호사 분들이 오시는 시간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밤새 불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됐고, 그렇게 까무룩 새버린 수술 날이 밝았다.


Day2. 수술하는 날

대망의 수술 날. 아침에 일어나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물이 왜 그렇게 먹고 싶던지 이상도 하지. 괜히 먹지 말라니까 목도 마르고 레드향도 먹고 싶고, 불안한 마음에 병실을 왔다 갔다 하며 맨손체조를 했다. 

어제 나와 같이 입원한 분이 혼자 있길래 말을 걸어보니 23살 학생인데 나와 똑같이 난소에 혹이 있어서 수술하러 왔다고 한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 병원에 갔더니 10cm 혹이 있고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놀랐을까. 

오후 2시에 수술이라고 하길래 우리 둘 다 수술 잘 받고 이따 보자고 이야기를 하자 학생이 빙그레 웃었다.


수술 2시간 전쯤, 담당 의사분이 나를 부르셨다.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 수술받을 내용과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등 수술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수술은 2cm의 구멍을 뚫는 복강경 방식으로 진행하지만 일단 들어가 봤는데 문제가 크면 개복을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배에 구멍이 하나 날 줄 알았는데 제왕 절개한 것처럼 길게 꿰맨 자국이 있으면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많은 설명을 듣고 동의하면 서명을 하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서명을 안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서명을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수술 1시간 전, 간호사분이 수술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하자고 말씀하셨다. 가서 바로 수술이 진행되는 건 아니고 별도의 공간에 누워있다가 수술이 준비되면 들어가게 되니 보호자분은 30~40분 후에 천천히 내려오라고 하셨다. 혼자 대기실에 누워있으니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나님, 이 순간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껏 그래 왔듯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선하신 뜻대로 이끌어주세요.

이런저런 망상들을 하다, 휴대폰 없이 그렇게 오랫동안 나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있어본 게 참 오랜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는데 지루해서 길게 느껴진 걸 수도 있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간호사분께서 수술실로 가자고 하셨다. 

은색 침대에 누워 눈부신 천장 조명을 바라보며 덜덜덜 실려갈 줄 알았는데 링거 걸이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 입장 전 간호사분이 대기실을 보며 ***님 보호자분 계시나요?라고 외쳤는데, 엄마는 어디 계신지 보이지 않았다. 이따 내려와서 속상해하겠네. 생각하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은 추웠다. 내 마음이 추워서 춥게 느껴진 게 아니고 정말 추웠다. 눈부시게 흰 조명도 한몫했다.

자리에 눕자 마취과 선생님이 들어와 이것저것 물으시고 다른 간호사분(혹은 의사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수술할 때 사용하는 무슨 선(몸에 연결된)을 왜 이렇게 연결했냐고, 이렇게 주렁주렁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번번이 이러냐고 한마디 하셨고, 다른 무언가도 마음에 안 드는지 혼잣말을 이어가셨다.

이 수술이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큰일이지만 이분에게는 그냥 직장에서 하는 그냥 그런 일중에 하나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마음이 묘하게 편해졌다.

잠시 후 마취할게요. 눈 뜨고 계세요.라는 말을 들었고 팔뚝에 바늘을 꽂은 자리가 서늘하게 저릿한 느낌을 받다가 기억이 끊어졌다.


눈을 뜨니 어느 복도에 놓인 침대 위에 내가 누워있었다. 너무 춥고 너무 졸리고 너무너무 아팠다.

정신이 들지 않고 자꾸만 자고 싶은데 간호사분께서 정신 차리세요. 말해보세요. 몸 좌우로 움직이세요. 그래야 마취 빨리 깰 수 있어요. 하고 자꾸만 말을 거셨다.

졸려 죽겠고 몸은커녕 손 끝만 움직여도 몸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픈데 왜 이럴까 싶었지만 그 와중에도 저분이 전문가인데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길래 춥고 아프다고 했다.

너무 추워서 몸이 덜덜덜 떨렸고 배가 너무 아팠다. 엄마가 어디선가 이불을 하나 더 구해 덮어주셨다.

아프다고 계속 이야기하니 간호사분이 지금 진통제를 맞고 있긴 하지만 환자가 계속 아프다고 하면 15분마다 한 번씩 이 버튼을 누르라고, 그르면 진통제가 추가로 나온다고 엄마에게 알려주셨다. 15분이 지나기 전에는 버튼이 눌러지지 않는 듯했다.

너무 아파서 엄마에게 그 버튼을 눌러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15분이 지나지 않아 소용이 없었다.

뭐지, 고작 작은 구멍 하나 뚫고 혹 몇 개 제거한 건데 이렇게 아프단 말이야? 그럼 출산은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거야? 내 생에 아이는 없다. 굳게 다짐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아파 너무 아파만 반복하던 중 나를 실은 침대가 덜덜덜 요란한 바퀴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5층 수술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입원실로 이동했다.

내가 있는 입원실은 입구에 방지턱이 있었는데 일손이 모자랐는지 엄마에게 침대를 들으라고 하셔서 엄마가 당황하셨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내 내 침대자리까지 오니 간호사분께서 나에게 내 침대로 건너가라고 하셨다. 

응? 네? 지금 팔도 못 움직이겠는데 몸을 들어 일으켜서 옆 침대로 건너가라고요? 난 못해. 전 못합니다. 일단 버텼다. 

하지만 간호사분들은 나 같은 환자를 하루에도 수십 명씩 보셨겠지. 역시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능수능란하게 나를 다루셨다. 내 등을 받쳐 자연스럽게 허리를 일으키셨고 다리를 접어 옆 침대로 옮기셨다. 

배에 힘을 줄 때마다 사지가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는데 이왕 내가 가야 한다면 빨리라도 끝내자 하는 마음에 간호사분의 목을 꽉 잡고 옆 자리로 옮겨갔다. 

간호사분이 나에게 '저 그렇게 잡으시면 제 옷 찢어져요!'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어렴풋이 나는데, 옷은 괜찮은지 모르겠네.. 죄송하고 감사해요.


내 침대로 옮긴 후 진정한 고통의 문이 열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몸에는 3개의 줄이 꽂혀 있었다. 

2개의 링거액과 1개의 진통 가스(?)를 받고 있는 링거줄이 하나. 이동이 어려우니 소변을 받아줄 소변줄이 하나. 수술 후 난소에 고인 피를 받아주는 피주머니 연결줄이 하나.

몸은 여전히 추워서 덜덜덜 떨리고 배는 아프고 몸을 웅크려 옆으로 좀 눕고 싶은데, 나무막대에 연결된 인형처럼 주렁주렁 연결된 줄들 때문에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자자 자고 일어나면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자자. 자야 한다.

하지만 그날도 잠을 자지 못했다. 아픔은 기본이고 혈압 측정과 링거 교체와 더불어 피주머니와 소변주머니를 비우는 것까지 더해져서 그날은 병실의 불이 꺼질 새가 없었다. 




너무 길어져서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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