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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Jul 30. 2020

희망에서 퇴직하는 게 희망퇴직은 아니잖아

이야기 17. 희망퇴직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요즘, 우리 회사도 힘들다. 

각 계열사는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로 구성되어 있지만 대부분이 사업이 관광객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하늘길이 막힌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어려운 계열사 한 곳이 직원들에게 희망퇴직 패키지를 제안했다.

법정 퇴직금과 근속연수에 따른 위로금으로 구성된 돈 꾸러미. 이걸 받고 나가지 않겠니?


나는 이 회사에 오기 전에 희망퇴직 패키지를 받은 적이 있다.

첫 직장이자 전 직장이었던 회사는 외국계 회사였다. 미국에 본사를 둔 그 회사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몇 년후에 한국에 진출을 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미 K-패치를 장착한 유사한 아이템의 회사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사그라져간 여러 외국계 회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나의 회사도 약 4년 만에 한국 지사 철수 결정을 내렸고 그때 내 생애 처음으로 희망퇴직 패키지를 받았었다.


그즈음 나는 28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는 이십 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이미 너무 늦은 것처럼 느껴졌었다. 더욱이 첫 직장을 가지기까지 힘들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다시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들었었다.

당시 회사는 2가지 선택지를 줬었다. 희망퇴직 패키지를 받고 퇴사를 하거나, 이 회사가 인수한 동일한 사업군의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사실 같은 사업군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몇 년 간 몸 담았던 그 분야는 더 이상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백기 없이 이직이 가능하다는 점은 나에게 엄청나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나는 불안했고 두려웠다. 


그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했다면 아마 나는 그 회사로 옮겼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 팀을 맡았던 이사님과의 면담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지금 이런 상황이 너희에게는 엄청나게 큰 일처럼 느껴질 거다. 하지만 이건 작은 상처가 난 것 뿐이야. 하지만 아무 회사에 들어가는 것 같은 섣부른 결정을 하면 그건 부상이 될 수 있어"


그 이사님과는 평소에 몇 마디 말을 나눠보지도 않았고,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때는 왠지 그냥 한번 믿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나이에 저 정도 지위에 올라간 사람이라면 뭔가 보고, 듣고, 겪은 게 있으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퇴사를 결정하고 내가 받았던 희망퇴직 패키지는 조촐했다. 몇 달 치 월급과 퇴직금, 연차를 돈으로 환산한 금액과 소정의 위로금 정도. 당시에는 회사가 어려워서 없어지는데 위로금까지 주다니! 하면서 감동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다른 회사에 비해서 엄청 적은 금액이긴 하다.

그럼에도 희망퇴직 패키지는 나에게 희망을 줬다. 비록 내가 다니던 회사는 없어졌지만 일 년 안에 취업하면 이득이야. 이런 정신승리가 가능하게 해 줬다. 덕분에 너무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이직할 회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그 후 넣는 회사마다 좋은 소식이 들려와 몇 번이나 이직할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해 충분히 시간을 가졌고, 머지않아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다시 희망퇴직 패키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막연히 두렵지만 재밌는 건, 한 번 해봤다고 그렇게까지 겁나진 않는다는 점이다.

희망에서 퇴직하는 게 아니다. 희망 찾아 퇴직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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