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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Nov 30. 2020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기

오랜만에 글을 써 본다.

퇴사하고 백수로 지낸 지 1년 정도. 그 시점에 내 브런치의 글이 끊겼다.


애초에 1~2년 정도는 특별한 계획 없이 현재를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둔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수 1주년 즈음해서 어떤 생각들이 들어버렸다.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이대로 지내도 괜찮은가. 발전욕 수련하기니 뭐니 머리로는 쿨한 척 괜찮다고 해도 마음은 조금 싱숭생숭했나 보다. 그 마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그릇 속의 물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내 그릇에 마주한 면에 따라 이리저리 찰랑대서 특정한 주제로 글을 쓰기 어려웠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니 말이다.


또한 회사 시절을 그리 힘들게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일기장에 써두었던 글들을 이곳으로 조금씩 옮기는 작업은 어렵지 않게 했는데, 퇴사 1주년 즈음 그것이 아주 바닥나버리고 새로운 글을 써야 할 때가 됐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도 하기 싫어져 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1년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은 번아웃 증후군의 일부였을까. 내가 하겠다고 스스로 신청해서 시작한 브런치 연재였는데도 말이다.


퇴사와 함께, 하기 싫은 것은 하지 말자는 쪽을 선택한 삶이니만큼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3개월 정도가 지나니 역시 쉬는 것이 답인지, 글을 조금 써 볼 용기가 생겼다.


그런데 글을 쓰지 못할 문제는 또 있었다. 이 생활에 너무 젖어버린 것이다. 백수 생활 초반에야 '회사에서 컴퓨터를 켜고 있을 시간이네.', '점심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할 시간이군.', '제품 출시 준비로 한참 바쁠 시기네.'와 같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백수가 된 나 자신과 비교하며 다양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 백수의 생활이 너무 당연해졌다. 익숙한 환경이 바뀌지 않으니 이곳에 끄적거릴 별다른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취미 삼아 설렁설렁하던 도예를 조금은 더 열심히 배우고 있다. 6월 이후로 일주일에 2~3회 정도씩 꾸준히 도예공방에 나가고 있다. 지금껏 머리를 쓰는 삶을 살아왔는데, 앞으로 10년 정도는 손을 쓰는 삶을 살아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이다.


집중할 것이 생기고 미래를 어설프게나마 그려보게 되자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백수 일기도 어차피 그저 내 일상생활일 뿐이었으니, 굳이 '회사'라던지 '퇴사'라던지 '백수'같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내 생활을 조금씩 써보는 것이 어떨까.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들의 글들도 특정한 주제만 항상 이야기하기보다는 본인 주변의 다양한 일들을 말해줄 때 좀 더 생동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진정한 두 번째 인생의 단원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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