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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Jul 14. 2021

노는 게 일상이 된다는 것

이상과 현실의 괴리

회사는 너무 다니기 싫고 일도 너무 하기 싫고, 대체 얼마를 벌면 쳇바퀴 도는 지긋지긋한 생활을 그만둘 수 있을까?


한때는 매일 하던 생각이다.

상상에는 날개가 있으므로 '내게 100억 정도의 재력이 있으면 무엇을 하며 살까?'를 상상해봤고, 결국 '생각보다 돈 드는 삶이 아니잖아!'라는 결론이 나서 과감하게 백수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운동 - 자유롭게 움직이는 신체를 만들기.

둘째, 도예 -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수련하기.

셋째, 글쓰기 - 이런저런 생각을 기록하기.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 첫 글에 기록해뒀다.


회사를 그만둔 지 흘러 흘러 거의 2년 가까이, 백수가 찐 일상이 된 요즘 내 (상상 속) 백만장자의 삶이 어떨지 확인해보자. (사실 이 글의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현시점에서는 꽤나 자조적인 나날이다.)




첫째, 운동.


회사원일 때에도 일주일에 3회 정도는 센터에 다녔으므로 내 시간이 자유로워지면 매일 3시간 정도는 운동에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얼마 전에 들은 "핑계는 끌어다 댈 수 있을 만큼 대야 한다"는 친구의 명언에 빗대 보자면, 나도 이 부분에서는 코로나 핑계를 대고 싶다.


2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대전에 내려오자마자 필라테스와 요가 센터를 열심히 다녔다. 그 결과 백수 1년의 소고에서 썼듯 몸이 꽤 건강해진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너무 신경 쓰여 1년 남짓 다닌 센터를 그만두었고,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홈트를 했다.


그런데 홈트라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약 8개월이란 기간 동안 운동 시간은 서서히 60분에서 30분이 되었고, 근육운동 위주에서 스트레칭 위주로 바뀌었다. 결국 요즘은 일주일에 1~2회, 30분 정도 스트레칭을 따라 하는 수준. 타고난 활동형 체질이 아닌 이상, 건강관리에는 역시 강제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그게 홈트로는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선수도 아닌데 이 시국에 쫄보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센터에 나가기도 어려운 일이다.


둘째, 도예.


작년 말, 올해 초에 도예에 대한 열정이 피크를 찍었다. 이 말은 지금은 하강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1년 넘게 도예를 꽤 오래 연습했고, 선생님과 모종의 딜을 했다는 이야기는 이전에 언급한 바 있다. 선생님의 작품 만드는 것이나, 출강을 도우면서 일주일에 이틀씩 도예 일을 했다. 원할 때마다 연습하려고 집에 나의 개인 물레를 장만하기도 했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 10년 동안 UX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며 전문가가 됐듯이, 다음 10년을 투자하면 도예 전문가가 될 것은 자명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노화'이다.


도예란 것은 흙과의 싸움이라 물리적으로 꽤 힘이 든다. 흙 한 덩어리만 해도 10kg이고, 유약은 커다란 양동이에 든 것을 다루어야 하므로 더 무겁다. 불편한 자세로 물레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있어야 한다. 하루를 몽땅 투자해 기물을 만들어두면 이제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음날에는 반건조시켜 굽을 깎아주어야 한다. 그 후에는 건조 후 가마에 넣고 하룻밤 초벌, 꺼내어 유약을 바르고 또 하룻밤 재벌을 해야 한다.


물리적인 일이 많다 보니 안 그래도 약하게 태어난 내 관절이 잘 버텨주질 않는다. 손가락, 팔꿈치, 허리가 아프다. 나는 점점 더 늙어갈 텐데 이 일을 진지하게 하려면 솔직히 내 몸이 감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 중. 내 삶에서 도예를 어떤 비중으로 가져가야 할까.


셋째, 글쓰기.


몇 년 동안 종종 에버노트에 일기를 쓰고 있었으므로, 그걸 옮기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브런치를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충실히 할 때에는 자극이 참 많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 새로운 자극은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그게 일기에 적힌다.


백수가 된 지 거의 2년, 새로운 인연은 무려 한 손에 꼽는다. 그나마 내가 편하게 느끼는 종류의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자극이 없다. 다들 너무 쉽게 이해되는 수준.

초반엔 백수 라이프 자체가 나에게 새로운 일이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이 순간을 잊을 새라 열심히 적었다. 지금은 그게 일상이 되어버리니 하루하루는 잘 흘러가는데 딱히 기록할만한 내용은 적다.


지방 소도시 외곽에 사는 덕에 계절 별로 변화하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글로 남길 만한 인사이트가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앞산에 새싹이 돋아나 온 세상에 연둣빛이 찬란하다."와 같은 글은 그저 그 순간의 나에게만 의미 있는 말이므로.


결국 보다시피, 최근엔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 거의 없다.




이게 현재의 내 백만장자(를 가정한)의 삶이다.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기라도 하듯이, 보란 듯 선언한 세 가지 모두 내 예상보다 잘 되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리에서 조금씩 꿈틀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이 삶이 좋다.

다만 이 글을 계기로 다시 초심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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