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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Nov 25. 2023

나르시시스트가 안정적인 사랑을 하기까지

에세이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일종의 두려움에 휩싸이는데 이유는 내가 이런 것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소문난 '불안정성 연애주의자'였다. 그런 연애에 나의 몫은 10% 정도 대부분은 외부 요인이다. 남은 90% 중 88%는 나의 부모님과 가정환경 탓이고 나머지 2%가 상대 몫이다. 변명인 것은 나도 잘 안다. 결국 98%가 나의 몫인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십 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놀랍게도 안정적이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거나 윤택해져서는 아니다. 나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가난하다. 멘탈리티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나약하다. 선천적으로 예민함을 타고난 나에게 세상은 온통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일으키는 독성 물질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음가짐이다.


예민함을 달고 사는 이들의 문제 해결 방식은 자기 중심주의다. 스트레스와 통증이 잦은 이에게 자신은 매우 중요한 존재다. 나를 두고 세계를 먼저 두는 이들을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른다. 그들은 스스로를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부끄럽게도 과거에 '구원자'를 자처할 정도로 나르시시즘이 가득했던 나는 통렬한 비판을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히틀러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까지 고통스러우면서 동시에 건전한 역설적인 자기비판이 있었다. 참고로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한 이와 절대 사랑에 빠져선 안된다. 그들은 소시오패스만큼 위험하다.


나르시시즘이 할퀴고 간 흉터는 꽤 크다. 여진에 시달리지만, 건강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동시에 나를 따라다니던 정신적 고통에서도 해방됐다. 나를 연민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내가 사라졌다. 이것은 불을 발견한 인류 수준의 진화다.


지금 사랑에 빠진 나의 연인은 나의 과거를 궁금해한다. 과거 에피소드를 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다. 나 역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지금의 내가 보는 세계를 그때의 내가 보면 생경한 기분일 테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이 꽤 최근의 일이니 관성적으로 익숙지 않은 것이 맞다. 지금의 나 역시 여러 가지 일로 일상에 균열이 생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정성'을 눈치채곤 한다. 두려움이 밀려오고 침잠의 시간을 갖게 된다. 끌어당기는 중력에 굴복할 때면 패배감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이 패배감을 오래 붙잡고 있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하냐고?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약속을 해두는 것이 좋다. 이번 사랑이 기간제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중요한 약속들을 잡아두는 것이다. 사랑의 불씨에 스스로 직접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다.


여러 이유에서 삶은 불안정성에 시달린다. 안정적인 연애조차도 언젠가는 그렇게 흔들린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시소가 기울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도 엉덩이 위치를 계속 바꿔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이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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