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사랑의 알림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 <헤어질 결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던 사춘기 시절, 당시 여자친구와 주고받았던 손 편지를 모두 버렸다. 그 후로 관계가 끝나면 흔적을 지우는 버릇이 생겼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마치 완전 범죄를 꿈꾸는 범죄자처럼 모든 흔적을 없앴다. 그러고 나서야 마음이 개운해졌다. 간혹 관계를 다시 이어가게 될 때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 지워버렸다"고 말했다.
근래에 사랑은 카카오톡이나 DM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카카오톡과 문자 고백이 금기시되는 시기도 있었으나, 요즘은 DM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SNS의 메시지 기능은 아날로그 세대의 손편지와 정확히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서류도 편지도 모두 디지털로 전환됐으니, 사랑을 고백하는 소중한 매개체 또한 디지털로 전환되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인가 말이다.
아내와 나 역시 하루 24시간 중 족히 10시간은 카카오톡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이모지, '라이언'과 '춘식이'는 사랑의 대리인처럼 마음을 전달한다. 디지털은 더 세련되게 그리고 쉽고 편하게 마음을 전달한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도,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도(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애정 표현을 더 잘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메시징 기능의 발달은 사랑의 휘발성을 더욱 부각한다는 단점이 있다. 영원성을 담보하는 사랑에게 이와 같은 단점은 치명적이다. 한편, 나같이 흔적 지우기를 좋아하는, 완전 범죄를 꿈꾸는 이들에게 단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아마 그들은 사랑의 디지털로의 전환을 선호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나의 경우 물리적으로 지우기 힘든 증거를 새긴 상태이니,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꿈꾸고 있는 완전 범죄가 있다면, 아내가 퇴근이 늦는 날 몰래 치킨을 시켜 먹는 정도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염려되는 점이 있는데 이 때문에 샤워를 마치자마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의 사랑의 데이터가 쌓인 카카오톡은 언제 휘발될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다. 첫 메시지를 남긴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사랑이 고스란히 쌓인 이곳은 '나가기' 한 번으로 지워질 수 있다."
나는 이 생각에 불안이 샘솟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과 서래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사랑을 전달하는데 그 방식은 퍽, 아날로그스럽다. 영화에서 서래는 해준의 사랑 고백을 녹음본으로 가지고 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가 담긴 녹음 파일이다. 영화에서 나온 해당 파일의 이름은 '무너지고 깨어짐'이다.
영화 초반부 해준은 스마트 워치에 사건을 기록한다. 서래를 만난 뒤로는 서래를 기록하는 장치로 역할하는데 해당 녹음 파일을 이후 절에서 서래에게 직접 들려준다. 일종의 사랑 고백이다.
서래는 해준을 붕괴시킨 기도수 살인 사건에서 완전 범죄를 꿈꿨으나, 자신이 간병하던 할머니 휴대폰에 남아있던 증거를 들키고 만다. 이 증거는 해준에 의해 사라지지만, 후에 '무너지고 깨어짐' 녹음 파일로 인해 증거로 남은 것을 알 수 있다.
서래는 치명적인 증거가 담긴, 어쩌면 두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파일임에도 지우지 않고 휴대폰에 남겨둔다. 이유는 해당 파일에 해준의 절절한 사랑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범죄와 사랑의 증거가 동시에 담긴 파일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녀는 우연한 터치로 재생된 "바다에 버려요"라는 해준의 말 한마디에 '결심'을 내리고 이포로 향한다.
엔딩에서 유추하건대 서래는 녹음 파일을 마치 카세트테이프처럼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다. 한편, 해준은 서래가 이포에 찾아온 이유, 그리고 그녀의 진심을 그녀가 바다에 던진 휴대폰으로부터 획득해 녹취록 파일로 얻어 확인한다. 마치 편지처럼 말이다.
두 사람은 휴대폰과 스마트 워치, 그러니까 최신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와 방식은 정말 곱씹을수록 재밌다.
아날로그 형태로 전달되지만, 결국 디지털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휘발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서래는 그 증거를 '나가기'나 '삭제'가 아닌 물리적 제거를 선택함으로써 휘발되도록 한다. 그 선택은 극단적이어서 증거의 발신지인 스스로에게까지 향한다.
나는 문득 그 많던 사랑의 알람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고 생각했다. 알람들은 실제 했고 나에게 와닿았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완전 범죄처럼 사라졌다. 남은 것은 내 희미한 기억들 뿐이다.
아날로그 세대보다는 디지털 세대에 가까운 나는 통화보다는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사랑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이다. 사랑의 디지털로의 전환이 옳은 일인가? 하고 묻게 된다. 디지털 시대가 그렇지 않아도 강한 사랑의 휘발성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해준은 물리적으로도 완벽히 사라진 '서래', 그러니까 자기 사랑의 증거를 찾아 소리친다. 부서지고 깨어지는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 그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뛰어다닌다. 우리는 그 마저도 언젠가 산화될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디지털 시대의 사랑은 한 번씩 밀려오는 마음속의 파도가 되어 나타나곤 한다.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글을 읽을 때. 그러나 이 마저도 디지털 소비 사이클 안에 있기에 금세 휘발되고 만다. 깊은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