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버금 Sep 05. 2019

당신의 사전, 그 후의 이야기



그 후의

이야기





  책이 나오던 첫 날, 교보문고에 같이 갔던 사람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텀블벅 책의 디자이너님이셨다.


  작년 여름엔가, 글쓰기 수업에서 그 분을 처음 만났다. 그 곳의 우리는 직업도 나이도 모른 채 세 달 동안 함께 글을 썼고, 마지막 날에 맥주를 마시면서 뒤늦은 자기 소개를 했다. 그때 그 분은 미대를 나와 현재 기획자로 일하고 계시다고 했는데 어째선지 왁자하고 소란한 틈에서도 그 말이 귀에 와 남았다. 몇 주가 지나고서 용기를 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책을 쓰려고 하는데, 그 책 표지를 맡아주셨으면 해서요."

  앞으로의 계획을 잡을 겸, 미팅을 하는 날엔 혼자 대본을 만들어 연습까지 했다. 제법 대범하게 말은 했지만 사실 준비랄 것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나는 브런치 작가도 아니었고, 책은 어떻게 만드는지, 아니, 그전에 책으로 묶어낼 만큼의 원고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쓸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내가 가지고 있던 거라곤 '당신의 사전' 이라는 제목과 원고 두 편뿐.


  넉넉한 건 간절함 밖에 없던 나는 '책을 쓸 준비가 다 되어있으니 같이 하기만 하면 된다' 고 뻔뻔하고 태연한 연기를 해야 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 아무것도 없는 내 밑천이 티가 났을까봐, 그가 것을 눈치 채고 거절할까봐, 벌벌 떨리는 손을 테이블 밑으로 숨기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죠."

  그 말에 너무 놀라 바보처럼 되물었다.

  "네? 하시겠다고요?"

  "네, 그래요. 제가 같이 할게요."

  그 뒤로 약속했던 3개월을 훌쩍 넘긴,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맨땅에 헤딩하는 나를 따라 그는 밤낮없이 나와 함께 헤딩을 해주었다. 책 쓰는 것도 만드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던 나는 그야말로 시도때도 없이, 아침이고 저녁이고 평일과 주말도 가리지 않고, 그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진짜 마지막으로..." 으로 시작하는 요청을 셀 수 없이 했. 그는 그때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지간에, 조금의 불편한 기색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었다. 너무도 모자란 나를 따라서, 가장 궂은 일과 가장 귀찮은 일과 가장 하찮은 일들까지, 묵묵히 모두 떠안아주면서.

  그렇게 오직 간절함만으로 무장해 진행했던 텀블벅은 목표 금액의 300%를 달성하는 결과를 이루었고 이후에 '당신의 사전'의 브런치북 수상 소식을 받던 순간에까지 그는 처음에 약속했던 '3개월'을 훌쩍 뛰어넘은 그 시간 동안 때론 디자이너로, 때론 편집자로, 때론 친구로, 때론 고마운 사람으로, 때론 미안한 사람으로 있어주었다.

  그리고 '당신의 사전'이 서점에 나오던 첫 날, 그와 함께 교보문고에 갔다. 그 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가장 앞에 있던 책 한 권을 사서 그에게 선물로 돌려주었다. 여러 번 손으로 쓸어보다 사진을 찍는 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때 왜 저랑 같이 일해주셨냐고. 고생길이 그렇게나 훤히 보이는데 후회는 없으셨냐고. 나의 물음에 그는 답했다. 그 일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책을 준비하는 동안 힘들었어도 행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고.


  앞에서는 웃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괜스레 눈물이 났다. 책에는 나의 이름이 쓰여있지만 나는 나의 이름 대신 그의 이름을 읽는다. 그래야 마땅하니까. 그가 없었다면 이 책도 없었을 테니까.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결코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당신의 사전', 새 책을 만나던 날에.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사전>을 책으로 만나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