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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Aug 08. 2019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아마도 우리 세대가 모두 그런가 봐. 가족이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짐이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고생하며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지.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네. 앨리스의 말이 옳았어. 가족은 내게 가장 큰 축복이야. 

    

  이 문장은 『청소부 밥』(토드 홉킨스·레이 힐버트 지음, 신윤경 옮김, 위즈덤하우스)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흔 가운데를 넘어서고 있는 나는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남자는 가족을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한다. 그것이 가장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다.’      

  내가 살아온 환경은 은근슬쩍 이런 사고를 머릿속에 주입해 왔다. 내 아버지가 그랬고 주위 친척 어르신들이 모두 그랬다. 내 아버지는 술 한잔 드시면 하시던 말씀이 있다. ‘이 아비는 이 집안의 가장이고, 어른이다. 따라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할 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제 너도 한 가정의 가장이 되니 철없는 짓은 그만두고 가족을 어떻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지 생각하고 살아라.”     

  이 모든 것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가족을 짐이라 생각하는 밑바탕이 깔려 있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어떤 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족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퇴근도 미루고 늦게까지 일한다.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하기도 한다. 

  이런 사고는 아마도 전통적인 유교 사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바깥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서, 이처럼 남자가 바깥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배우 엄정화와 황정민이 나온 영화 <댄싱퀸>이 있다. 이 영화에서 아내 엄정화는 서울시장 후보의 사모님으로 그리고 잊어버렸던 꿈인 댄스 가수가 되기 위해 남편 몰래 연습생으로서 이중생활을 하다 상대편 후보에게 들킨다. 서울시장 후보 부인이 야한 옷을 입고 댄스 가수를 하려 한다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러자 황정민은 서울시장 후보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내 꿈을 위해 평생 나를 뒷바라지한 아내의 꿈을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가수인 게 뭐 나쁜 일입니까? 가족은 다스리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겁니다. 국민도 다스리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겁니다.” 

  찡하게 울린 말이었다. ‘그래! 가족은 다스리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거다.’     

  이 영화에서도 보여주듯 우리 사회는 어찌 보면 남자, 남편, 아버지, 가장이란 가정을 다스리는 존재,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가장에게 가족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사회도 많이 바뀌어 이런 생각이 사그라든 것은 맞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을 짐이라 생각하는 순간, 가족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가 터진다. 왜냐하면, 그 밑바탕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모든 단추를 풀고 처음부터 다시 꿰어야 한다. 


  가족을 축복이라 생각하는 순간, 함께 손을 맞잡고 길을 걸어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워지고 함께 할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갈 것이다. 

  가족은 내게 찾아온 축복이자, 함께 가야 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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