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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Feb 16. 2019

마르크스와 아인슈타인과 막내딸이 응하지 않은 저녁식사

“네네 좋은 말씀이에요.. 물론 그 사업을 통해 이루어낸 역사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더 다양한 방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곤란해질지도 몰라요. 할리우드를 보세요. 누가 그 막대한 자본과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시대의 아이콘이 갖는 가치라는 건 곧 버려지고 말아요. 말씀하신 역사적 가치 때문에 곱게 단장해서 쇼 케이스에 넣어두는 정도의 예의라도 차리는 거지요. 사실 저만해도 그래요. 아버지께서 틀리셨다는 게 절대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잖아요.”


노인은 묵묵부답이다. 스테이크를 써는 오른손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부들부들 떨리는 어린 송아지의 근육덩어리가 옅은 피를 머금는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버지. 저도 어머니도 이 출판사에 대해서 만큼은 정말 할 말이 많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아버지와 바꾼 회사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문제는 단순히 잃어버린 가족의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나 단순한 투자유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해요. 아시아 연합과 개도국 연합이 합병한 지 8년 만에 원자재 값이 20배로 뛰었어요. 사실상 예전 OPEC이나 FTA의 오만함을 넘어섰지요. 중국의 교육혁명으로 인적자원 시장도 주도권을 잃어가는 판국에 컨텐츠 개발 쪽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나마 하이테크가 필요한 플랫폼 시장이 아직 버티고 있는 실정이에요. 이번에 제가 개발한 새로운 플랫폼이 휴대성과 보안유지 면에서 그쪽보다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결정만 내려주신다면 아직 국제표준 선점의 여지가 있어요. 국제 표준이 되면 곧 국제기구와 공공기관들, 대학과 글로벌 기업들에 의무사용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구요. 지난 크리스마스에 막내가 이야기한 건 잊어버리세요. 걘 원래 자기 멋대로였잖아요.”


청년은 노인의 접시를 가져가서는 부드럽게 칼을 놀려 스테이크의 근육 다발을 끊어가며 격앙된 어조로 아버지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묽은 피가 흥건하다. 노인은 땀이 맺힌 안경다리를 쥐고는 가만히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일곱 조각이 된 송아지들이 자랑스럽게 돌아온다.


“아시죠. 최근 몇 년 간 대부분의 작가들이 온라인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어요. 일단 중앙 출판 네트워크에 소액의 계약금으로 출판하고 집계된 조회기록에 따라 일정액을 입금받는 방식 말이에요. 아시잖아요. 제 아이디어였어요. 아버지께서는 그때 저를 나무라셨지만, 지금 보세요. 모른다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가치를 말씀하셨지요? 아버지가 생각하는 가치라는 건 자본주의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고 정보를 입수할 수 있어야 해요. 새로운 이데올로기, 그러니까 제3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것은 늘 달갑지 않은 것들을 요구해요. 좋아하고 익숙한 것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노인은 아들을 바라본다. 노인은 아들이 참 희망찬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우물우물 송아지 근육을 씹어 삼킨다. 늙어버린 잇몸으로 어린 송아지 한 조각을 위장에 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바빠진 것은 일상적인 일들이 더 많은 시간 할애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넥타이를 매는 것과 망할 놈의 계단, 그리고 아들과의 대화가 그렇다. 노인은 앞에 놓인 접시를 바라본다. 앞으로 세 조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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