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내엄마 17화] 몸 아픈 것 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처음엔 아픈 곳이 없다던 엄마는 조금 더 추궁하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요 며칠 전부터 엉치가 아파서 걷기도 힘들고 서 있기도 힘들다."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괜찮아질 줄 알았지. 근데 아픈 게 무릎으로 내려오더니 오늘은 발목까지 아주 디딜 수 없게 시큰거린다."
"진작에 말을 해서 병원에 갔어야지."
"뭐, 늘 이렇게 아픈 걸 뭐. 병원에 가도 뭐 그렇고. 엄마 옛날부터 디스크가 있잖니. 이번에 또 도진 걸 거야. 며칠 지나면 낫겠지."
"엄마가 의사야? 혹시 다른 문제가 생겼을지 어떻게 알아. 내일 병원에 가 봐요. 내일 내가 올게."
괜찮다던 엄마는 병원에 오니 중환자나 된 것처럼 굴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라는 의사의 질문에 엄마는 마치 방언이라도 터진 양 아픈 곳을 줄줄 읊었다.
"며칠 전부터 엉치 끝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발목이 디딜 수 없게 아파요."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아픈 지는 한참 됐어요. 한 20년 전쯤부터 아프기 시작했는데. 약 먹고 괜찮다가 또 아프고 그래요. 그때는 여기만 아팠는데 지금은 여기까지… 지난번 욕실에서 넘어져서 발가락 골절을 당한 후로는 영 그래요. 붓기도 잘 붓고…"
허걱. 20년 전이라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엄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한 20년쯤 전에 디스크 판정을 받았어요."
"그때 MRI 찍으신 거예요? 아니면 X-레이만 찍은 거예요?"
"그땐 그냥 X-레이 찍었죠. 약 먹고 하니까 괜찮더라고요. 근데 몇 년 전부터 또 아프더라고요."
엄마는 꼭 어린애 같았다. 의사의 표정을 보니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의사는 지금 아픈 부위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먼 과거까지 소환해 오는 환자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그러나 의사를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는 의사로서 필요한 지시를 하는 것으로 엄마의 말을 현명하게(!) 차단했으니 말이다.
"환자분 크게 어디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지는 않아요. 사진 한 번 찍어볼게요."
이 말은 영상 촬영실로 이동하라는 신호였다. 그런데 엄마는 일어날 기색 없이 하소연을 이어가려 했다. 한마디로 '눈치가 없었다'. 의사는 '이제 어머니 모시고 가세요'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민망해진 것은 오히려 나였다. "엄마, 이제 사진 찍으러 가요."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엄마는 왜 우리가 물을 때는 괜찮다가도 의사가 물으면 20년 전에 아팠던 것까지 끄집어내는 것일까. 나도 엄마 나이가 되면 알 수 있을까. 아니다. 엄마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어리광 섞인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치료'와 '완치'에 대한 희망 말이다.
자식들에게는 아무리 말해봤자 당신의 고통을 알아주지 못하지만, 의사는 적어도 그 병이 어떤 병인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수반하는지는 아니까. 완치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완화는 시켜주니까. '당신의 증세를 최대한 세세하게 설명해야 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당신의 고통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믿음과 희망이 작금의 증세만이 아니라 병의 역사까지 설명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현실 속 의사는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로 인해 1분 1초에도 인색하지만 말이다.
아픈 몸보다 엄마가 정말 두려워 하는 것
첫 진료 이후 엄마와 나는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엄마 좀 어때? 차도가 좀 있어?"
"아픈 게 이리저리 돌아다녀. 어제는 엉치, 오늘은 무릎과 발목 내일은 어디가 아프려나.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 약을 먹어서 그런가."
"다행이네. 엄마 이제 힘든 일은 하지 마. 쪼그리고 앉아서 일하는 게 제일 안 좋다잖아.
"그래. 알았다."
엄마는 대답은 참 잘한다. 그런데 대답만 하고 말을 안 듣는 아이들처럼 자기 고집대로 한다. 이번에도 괜찮아질 만하니 또 시골에 가서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완두콩을 까오고 고구마 줄거리를 해오고 무청을 해왔다. 그때마다 지청구를 늘어놓지만 소용이 없다. 늘 이런 식이다.
"의사가 당분간 그런 일 하지 말랬잖아."
"그래도 콩 먹으려면 까야지. 어쩌냐. 조금 있다 또 깨 털러 가야 되는데. 김장하려면 마늘 사다 까야 되는데…"
"그런 거 다 우리가 할게. 엄마는 제발 그냥 있어."
"그래도 엄마가 있어야 일이 되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어쨌든 조금 나아졌다고 또 일하다가 아프다고 하면 이젠 병원에 안 모시고 다닐 거야."
이런 엄포가 통할 리가 만무였다. 나도 엄마도 그냥 말뿐이라는 것을 안다. 난 엄마가 시골 가겠다고 하면 또 모셔다드릴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또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팔순의 노모에게는 아프고 괜찮고 또 아프고… 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지도 모르겠다. 결코 '완치'는 없는. 엄마에게 어지간히 아픈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불편함'일 뿐일지도.
정작 엄마가 두려워하는 것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있어야 일이 돼'라는 말은 '엄마도 아직은 쓸모 있는 사람이야'의 다른 말일 뿐일지도. 우리가 이따금 자신을 향해 외치는 '나 아직 살아 있어'라는 말처럼 말이다.
노년은 이런 것이다. 육체의 고통보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는 실존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시기가 노년이다. 나의 엄마는 혹여라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엄마는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2021.11.22]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