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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Nov 17. 2021

큰언니의 고들빼기김치 특급 비법은 엄마 비법

[팔순의 내엄마 16화]

"처음 한 거 맞아?" 큰언니의 고들빼기김치 특급 비법

[우리집 김장 자랑] 날밤과 오징어채를 넣은 독특한 고들빼기김치... 엄마 손맛 부럽지 않네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 시즌이 돌아왔다. 배추와 무를 직접 심어서 김장을 담그는 우리 집은 진작부터 김장이 시작되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맘때면 총각무가 잘 들었는지, 배춧속이 잘 차고 있는지 식구들 신경은 온통 무와 배추에 가 있다. 다행히 올해 배추와 무 상태는 양호한 편이라 안심했는데,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에 무가 얼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장 일이 다음 주로 잡혀 있기 때문에 무를 미리 뽑을 수도 없고 말이다.



젓갈은 일찌감치 10월 말에 강화 외포리 젓갈 시장에 가서 생새우와 새우젓을 사다 놓았다. 다른 집들은 이것저것 다양한 젓갈을 넣기도 하지만 우리 집은 생새우와 새우젓 그리고 멸치 액젓이면 충분하다. 통통하고 뽀얗게 빛나는 조그마한 몸통의 새우젓이 우리가 1년 동안 먹을 김장 김치에 핵심 양념인 것이다. 새우젓을 사러 가는 날은 강화여행과 꽃게탕 혹은 대하구이 미식 여행을 겸하기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새우젓 구매가 우선인지 강화 여행이 우선인지 모르게 되었다. 새우젓 품질이나 가격 흥정은 모두 엄마 몫이다. 우리는 뒤에서 병풍 치고 기다렸다고 셈을 치르고 들고 나오는 것이 전부다.


새우젓을 사 오고 한 달 후쯤 본 김장에 앞서 알타리무김치와 동치미를 먼저 담그고 보름 정도 지나 김장을 담그는 것이 우리 집 김장 루틴이다. 참, 알타리 무김치를 하기 전에 고구마를 캐고 나면 일 년 먹거리와 관련된 일이 모두 마무리가 된다.


“엄마 올해 고들빼기김치 안 해요?”

“안 한다. 내가 언제 그 김치 하는 거 봤냐?”

“그럼 어쩌지? 고들빼기가 마당에 진짜 많이 올라왔는데?”

“먹고 싶으면 네가 해라.”

“내가 어떻게 해. 어떡하지. 큰일 났네.”


고구마를 캐던 날 엄마와 언니가 또 고들빼기김치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엄마는 고들빼기김치를 별로 안 좋아하신다. 그래도 자식들이 먹고 싶어 하면 귀찮아도 담글 법도 한데 고들빼기김치만은 극구 담그려 들지 않으신다. 지금껏 엄마가 고들빼기김치를 한 것이 다섯 번 정도 되려나. 사정이 그러니 식구들 중에 고들빼기김치를 즐겨먹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나서 언제부터인지 고들빼기김치의 쌉싸름한 맛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형제들도 그렇다고 했다. 특히 삼겹살 구워 먹을 때같이 먹으면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것이 고기와의 궁합이 그만이다. 파김치와는 다르게 ‘쌉싸함’이 고들빼기김치의 매력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슬쩍 한 마디 거들었다.


“엄마 고들빼기김치 하지그래? 내가 도와줄게. 맛있잖아. 다들 좋아하고.”

“싫다니까. 좋으면 너희들이 해 먹어라.”

“근데 왜 그렇게 하기 싫어해?”

“그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줄 아니?”

사실 난 고들빼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몰랐다. 완성된 김치만 먹어봤지 생전 고들빼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고들빼기도 배추나 무처럼 씨를 뿌려 경작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고들빼기를 ‘잡풀’로 여겼다.

“그느믄거 한번 밭에 올라오면 온 밭에 다 고들빼기 천지가 돼. 씨가 날려서 아무 데나 가서 자라는 게 고들빼기야. 네 이모네도 한번 고들빼기 심었다고 천지가 다 고들빼기가 돼서 그거 없애느라고 한참 애먹었다더라.”

“그래요?”

“그렇다니까. 예전에 민들레도 안 먹더니 요즘은 몸에 좋다니까 민들레도 그렇게들 먹지 않니?”


결국 고들빼기김치 대화는 그렇게 맥없이 끝났다. 고구마를 다 캐고 집에 갈 채비를 하려는데, 엄마의 양손에 이상한 풀 뭉치가 잔뜩 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그새 풀 뽑았어? 손에 그게 뭐야?”

“이게 고들빼기야. 좋다는 사람 가져가서 해 먹으라고 그냥 뽑았다.”

‘김치도 안 담글 거라면서 뭐 하러 뽑았담? 우리 말이 마음에 걸렸나?’

“아무도 안 가져가면 그냥 버리고.”

“그럼 그거 내가 가져가서 한번 해 볼까?” 결국 엄마가 캐 온 고들빼기는 큰언니가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가져갔다.


그날 저녁 엄마 핸드폰에서는 불이 났다. 물론 큰언니에게서 온 전화다. “어떻게 다듬느냐부터 시작해서 며칠이나 삭혀야 하나? 뭘 넣고 삭히냐? 등등등…” 옆에서 듣고 있자니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히 묻고 대답하고 있었다.


고들빼기는 풀처럼 잔털이 많아서 일일이 다듬는 것이 일이라고 한다. 총각무 뿌리와 줄기가 맛 닿는 부분을 칼로 살살 긁어서 누런 줄기와 잔털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총각무보다 작아서 다듬는 데 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음이 중요한데 고들빼기는 그냥 담그면 쓴맛이 강해서 절대로 먹을 수 없단다. 때문에 쓴맛을 제거해 주는 것이 고들빼기김치의 핵심이다. 일명 ‘삭히기’과정인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제일 애를 먹는 과정인 것이다.


“식초와 소금을 섞은 물에 고들빼기를 담가 놔.”

“얼마나?”

“쓴 물이 다 빠져야 되니까 한 사나흘 담갔다가 상태 봐서 하루 이틀 더 삭히든지. 삭으면 말끔하게 씻어 건져 물기를 뺀 후 김치 양념하고 물엿 넣고 버무리면 돼.”


통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왜 엄마가 고들빼기김치 담그는 것을 마다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듬고 며칠 동안 삭혀서 씻고 양념해서 버무려 넣는 과정이 정말 귀찮을 것 같다.


며칠 후 총각무김치와 동치미를 담그기 위해 시골집에 또 모였다.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젠 저마다 한 두 가지씩 반찬을 만들어와서 펼쳐놓고 먹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각자 해 온 반찬을 꺼내 놓았다. 그때 큰언니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내가 고들빼기김치 해왔어.” 하면서 김치를 짠하고 내놓았다.


“우와.”

“와 맛있다.”

“진짜 잘 담갔네.?"

“엄마가 안 한다고 하니 큰언니가 했네?”

우리 형제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큰언니가 처음 한 고들빼기김치는 의외로 정말 맛있었다!. 엄마도 한 입맛 보고는 “처음 치고는 아주 잘 담갔네?" 하시며 칭찬을 하셨다.


“엄마, 여기 밤도 넣고 오징어채도 넣었어.”

“그러게 말이다. 아주 제대로 했네.”


고들빼기에 날밤을 납작하게 썰어 넣으면 아삭하고 달짝지근한 밤 맛에 김치 양념 맛이 배어서 훨씬 감칠맛이 난다. 엄마가 고들빼기김치를 할 때면 꼭 밤과 오징어 채를 넣으셨는데, 엄마가 따로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큰언니도 그대로 따라 한 것이 참 신기했다. 딸들은 엄마를 닮는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희한하게 어떤 것들은 일일이 말해 주지 않아도 그냥 엄마가 하던 대로 따라 하게 된다. 옛말에 ‘장가를 가려면 장모를 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싶기도 하다.


“맛있지? 정말 맛있지 않니? 처음 했는데 진짜 잘했지?” 큰언니는 자기 스스로도 대견했는지 연신 물어본다.

“이거 다 먹으면 한 번 더 하려고. 해 보니까 재밌네?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한다.


큰 언니는 동생 수대로 작은 반찬통에 고들빼기김치를 담아 왔다. 내 몫도 있었다. 이제 내년부터는 “엄마 고들빼기김치 담가 줘.” “싫다. 네가 해 먹어라” 하는 엄마와 큰언니의 실랑이를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의 이런 '소란'을 듣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서는 흐믓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나이 들면서 당신을 닮아가는 우리가 예쁘고 기특했던 것일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87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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