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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May 24. 2022

오늘도 집과 자신을 책임지는 누군가에게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Photo by instagram.com/anniespratt/


안녕하세요. 첫 편지를 보냅니다. 어제 저는 이불 솜 보충재를 구매했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기에 겨울잠 준비를 미리 해두려고요. 이 편지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첫 편지입니다. 수취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제 머릿속에는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당신이 그려집니다.

당신도 꽤 집과 당신을 돌보느라 지쳐있었던 모양입니다.


집과 같이 어딘가에 머무르며 매일을 보내고 살아간다는 것은 미세먼지가 바깥뿐만 아니라 집 안 창틀에도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는 것을 체감하는 일입니다. 계절마다 다른 이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계절에 따른 이불 교체를 직접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시시때때로 상처받은 일이 있는지 옆으로 휙 하고 빗겨져 버린 칫솔모를 발견하면 빠르게 구제해줘야 하고요. 원래 있던 가구의 위치를 옮겼을 때는 먼지는 성실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쓰레기봉투는 누구의 덕인지 나와 동일하게 삼시 세끼를 먹고 배불러가 내가 얼마나 먹은 건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있는 집에는 내 옷보다 먼저, 다른 사람의 계절 옷을 꺼내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익숙해져요. 계절 옷의 마중이 늦으면 계절과 어색해진 옷으로 감기에 걸려 차례차례 온 가족이 감기를 맞이하니까요. 설거지와 청소기 돌리기, 바닥 걸레질하기 그리고 화장실 청소같이 자주 해야 하는, 눈에 보이는 일 말고도 집안일은 그 외에도 적어도 서른 개쯤은 더 있는 듯합니다. 


 

여름에는 특히, 화장실과 부엌의 소독을 방심하면 날파리떼를 만날 수 있고 자칫하다간 쌀을 보관해둔 통에서 쌀벌레가 생긴 경험도 있습니다. 보관이 치밀하지 않았던 제 탓이었지요. 그렇게 많고 작은 벌레들이 우리 집 어느 곳에 모여 있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모른 채 눈 감았던 날들만큼 매일 쌓아진 주방의 기름때로 때아닌 팔 근력 운동을 하면 이제는 나이가 있어선지 팔도 쉽게 저립니다. 나의 체력과 소박한 윤택함을 위하여 그리고 이 와중에 효율성을 거들먹거리며 냄새가 독하지 않으면서 세정력이 좋고 용기도 어느 정도 예쁜 다목적 세제를 검색하는 일 또한 집안일에 포함해줘야 한다 생각합니다. 이 서치는 옷이나 가구를 쇼핑하는 것처럼 나를 기쁘게 하지 않은 부류임에도 나는 꾸역꾸역해내니까요. 이렇게 ‘청소 - 힘듦 - 필요성 발견 - 서치 - 새로운 도구로 청소하기’와 같은 일상의 패턴이 집안의 모든 것에서 적용되고 늘 일어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또는 알고 계신 분인지 모르겠습니다.


반질반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윤택한 삶을 유지하려면 일 년에 세 번쯤은, 주방 싱크대 타일의 누레진 줄눈을 전용 화이트 마카로 칠하는 아무도 모르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왜인지 저는 그런 것에 집착하게 돼요. 완벽히 청결한 타입도 아니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사회에 나가 어떤 직무로 쓰인 명함의 나로 일하는 것 말고도 자신에 대한 삶의 기본적인 책임을 지는 집안일에 있는 듯합니다.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하지만 능률 없는 일로 취급받곤 하는 그것에요.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 대신해줄 누군가가 없을 때, 나 자신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청결히 해야 하는 이 기본값에서부터 삶의 고단함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저도 결혼을 하고서야 알았습니다. 때론 그 고단함이 인생을 재미없게까지도 해요.


또 저는 어떻게 걷는 건지 그렇게나 바짓단이 잘 풀립니다. (뱃살 때문인지 배 부분 단추도 나가떨어짐이 빈번해 간혹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건조기에서 빠르게 꺼내는 타이밍을 놓쳐 구깃구깃해질 대로 구겨진 옷을 보며 다시 빨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중 나은 옷을 골라 아우터로 대충 감추고 외출을 합니다. 부족하지 않은 옷장 속에도 풀린 바짓단을 꿰매지 못해 혹은 구겨진 셔츠를 다리지 못해 당장 내일 나갈 곳에 있을 옷이 단 하나도 없는 난제를 만나면 이때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데도 말이죠. 아 그리고 보풀 제거기가 있음에도 아예 보풀이 잘 안 생기는 옷만 입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의 옷과 어른의 옷을 분리해 빨고 아기 옷을 빨래 망에 넣어 빤다는데, 또 건조기에 돌리지 않고 빨래건조대에 널어 말린 옷은 구김도 없고 목 부분도 줄어들지도 않더군요.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새로 산 옷인데도 건조기 사용으로 줄어든 옷과 늘어난 목 부분을 보면서 또는 검은색 하얀색을 동시에 빨았더니 하얗고 칙칙한 색이 된 나의 티셔츠를 보며 ‘나 잘살고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듭니다.


때로는 옆에서 보면서도 몰랐고 어쩌면 모르는 체 했던 그 삶을 과거로 두고 현재의 고단함을 느끼며, 이전에는 누군가 해주어 살아가진 날들이 이제 와 고마운 마음이 들어 무색합니다. 사계절을 지내며 어딘가에 머무르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남들이 모를 수밖에 없을 만큼 사사로운 것들을 매일 해내고, 그렇게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는 나를 건강히 지켜내는 것.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다르게 지칭하고 싶어요.



눈 비비며 나가는 이른 새벽 운동만큼 성실한 자에게 주어지는 부지런하다는 명예는 깨끗이 씻긴 뽀드득 소리 나는 그릇처럼 오늘을 정갈히 살아낸 자에게도 부여해야 합니다. 오늘을 책임지며 바쁘게 살아낸 와중에 산책하며 지는 노을을 발견한 자라면 더욱더 명예롭고요.


결혼하면 그래서 어떤 면에서 어른이 되는가 봅니다. 당연히 결혼이 아니어도 되고. 집을 그리고 나를 책임져 사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물리적 독립을 하는 순간 우리의 정신적 독립도 서서히 시작되니까요. 이보다 더욱 강력한 정신적 독립과 동시에 동거인과의 전우애는 육아입니다. 레벨 업이 한 단계가 아니라 다섯 단계쯤 껑충 올라가거든요. 신이 사랑하여 만들었다는 인간은 정말 멋쟁이들입니다. 그 모든 것을 울고 웃으면서 감수해내고 그 와중에 행복 찾기나 자아 찾기도 잊지 않잖아요.



가을을 보내고 갑자기 온 듯 추어진 겨울 앞에 저는 오늘, 구스 털은 아니지만, 그만큼 따뜻하다는 이불 보충제를 샀습니다. 이불 커버와 솜 보충제를 실로 꿰매며 이런 기술은 따로 배운 적도 없는데 엄마 옆에서 몇 번 했다고 나도 잘도 하네 싶었습니다. (제가 결혼 후에도 나의 엄마는 내가 여름에도 두꺼운 겨울 이불을 덮고 잘까 봐 염려하기도 했는데 엄마가 그간 했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여간 미심쩍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더운 여름에도 솜이불 덮기를 좋아합니다. 그건 엄마도 그렇다 하네요) 중간에 이불을 뒤집어쓴 유령 놀이도 아들에게 잊지 않았고요. 아기는 까르륵 웃고 새로 산 아기 캠핑 의자에 앉아 창밖에 달님을 보며 인사하고 잠이 들었기에, 혼자 남은 감사한 시간에 누군가는 읽어줄 이 편지를 씁니다. 


한 계절을 보내고 오늘을 살아낸 우리는 모두 명예로 와요. 당연시되 버린 늘 해야 하는 것들 또한 사실은 버거운 일들이었습니다. 내가 하지 않는 이상 당연하게 굴러가는 건 없는 것이었는데 그간 몰랐던 나를 이제 와 꾸짖는 것도 무의미하겠지요. 오늘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해야 할 일을 하고 누군가와 합을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이미 제가 매일 하는 일인데도 말이죠. 또 오롯이 혼자 나 자신을 감당해 내는 누군가도 대단하고요. (혼자라니 네 살 육아를 하는 저는, 당신 앞에 오롯이 혼자가 붙었다는 것이 한편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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