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아득한 자연 풍경이 그리울 때
심장 두근거리는 공포는 싫고, 조용한 호러영화가 생각날 때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을 때
A24 스타일의 호러영화가 보고싶을 때
평온함으로 가득 찬 가족사이를 뚫고 나타난 축복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램>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줄거리를 모르고 보길 추천한다. 우연히 왓챠파티로 <램>을 봤다. 줄거리나 A24 작품이라 사실은 전혀 모르고 보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부는 스릴러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아이슬란드 시골에서 부부가 양떼 목장을 운영하는 평범한 이야기로 보인다. 1시간 46분의 러닝타임 중 50분 정도는 시골의 고요함으로 차있다.
마리아(노미 라파스)와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는 식사를 하면서 이론적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기사를 본다. 마리아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말하고, 잉그바르는 미래가 궁금하지 많다고 말한다. 둘은 시간여행에 대해서도 다른 지향점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 몇 없는 대사 중 꽤 평범한 대화는 두 부부의 관점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암시한다.
성탄절을 앞두고, 목장은 출산을 앞둔 양들이 있었다. 어느 날, 라디오의 미사 소리와 함께 새끼 양이 태어난다. 마리아와 잉그바르는 양을 보고 놀라지만, 관객은 양이 어떤 모습인지 중반부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양이 조금 다르다고 눈치챈 건 그들이 안방으로 들여왔다는 점이다.
잉그바르는 아기 침대를 만들고 둘은 양에게 '아다'라는 이름을 붙이고 우유를 먹이며 지극 정성으로 키운다. 마치 그들의 아이가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임산부들 중에서 '모성애'에 대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아이를 나의 몸으로 뱄다고 모두 모성애가 생기는 건 아닐 것이다. 내 몸에서 자라난 아이가 낯설게 느껴질수도 있고, 힘들게 임신할수록 이 아이에 대한 애정도 높을 수도 있다. 동물 중에서도 새끼를 낳고 자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동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또 다른 관점으로 보면 '모성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벽에 걸린 사진을 봤을 때, 마리아는 과거에 아이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아다'를 보고 다시 아이가 돌아온 것처럼 마리아는 애정을 쏟는다.
아다를 낳은 진짜 엄마 '양'은 아다가 있는 방의 창틀에 붙어 매일 울면서 찾아온다. 오히려 그런 엄마 양에게 마리아는 소리를 지르고 창틀을 막으며 아다를 진짜 엄마와 뗴어놓는다. 한 아이를 두고 모성애를 느끼는 두 엄마의 갈등은 참 아이러니하다. 오히려 이 장면에서 양 엄마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결국 모성애는 아이를 생각하는 관점에서 오는 게 아닐까? 사실은 아다를 입양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마리아처럼 말이다.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 잉그바르의 형 페트루가 찾아오고 나서야 관객에게 아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한 쪽 손을 포함하여 하반신은 인간, 상반신은 양의 모습을 한 아다. 목소리는 인간과 양 그 사이. (다섯살의 아이 모습과 유사해 아다는 꽤 귀엽다.)
아다가 자라고 아다를 찾는 양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마리아는 불안함을 느낀다. 결국 마리아는 아다의 엄마를 죽인다. 세 가족의 행복한 시간만 계속될 줄 알았으나, 페트루는 '그건 인간이 아니다' 라며 괴물 취급을 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상처를 알아서인지 형도 아다의 존재를 조금씩 이해해볼려고 노력한다.
세 가족에서, 네 가족이 된 이 가족은 고요한 나날을 보내는 듯 하다. 그러나 저 멀리 갑작스럽게 찾아올듯한 불안감이 은연 중에 깔려있다.
아다는 거울을 바라보며 어느 순간 본인이 양도 사람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
아다의 자아가 생기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질때쯤, 행복을 덮치는 불행이 찾아온다. 잉그바르가 낮잠 잔 사이, 마리아가 보이지 않아 아다와 찾으러 나선다.
마리아의 과보인가? 반인반수의 엄청난 양 인간이 찾아와 잉그바르를 살해한 뒤 아다를 데리러 간다.
결국 아다가 엄마 양을 살해하고 뺏은 업보를 돌려받은 것이 아닐까? 잉그바르의 죽음을 목격한 마리아가 절망에 빠진 채 영화가 끝난다.
영화 초기의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리아가 겪은 상실감을 '유괴'로 채울 순 없는 노릇이다. 그의 과보가 잉그바르로 돌려받은 셈이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독창성상을 받을 만큼, 소재는 독특하다. A24다운 선택이다. <미드소마>, <유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스릴러이므로 오히려 제작사를 모르고 이 영화를 받아들였을 때 매력을 더 크게 느낄 것 같다. 새로운 '과보 스릴러' 영화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대사나 음악이 거의 없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적막의 공포를 즐긴다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