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작꼬작 Jun 16. 2023

차를 사기 전에 면허부터 갖자

운전면허증 만들기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전부터 운전면허 시험을 예약해 놨다. 운전면허증은 미국 정부에서 발행하는 몇 안 되는 신분증이다. 비행기를 타든, 공공기관에 들어가든, 술이나 라이터 같은 것을 살 때든, 그리고 집을 보러 갈 때든 신분증이 필요하다.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여권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여권은 지갑에 들어가지 않아 휴대하기 불편하다. 


그래서 운전면허를 빨리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고 필기시험부터 예약했다.


운전면허를 따려면 두 번 시험을 봐야 한다. 첫 번째는 필기, 두 번째는 실기. 


캘리포니아에서는 한국어로도 필기시험을 볼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운전할 때 어차피 영어를 써야 하니 영어로 공부했다. 집 앞 카페에서 공부를 하니 왠지 다시 학생이 된 것 같고 재미있었다. 내용은 특별히 어렵지 않았다. 평범한 문제들인데, 다만 거리 단위가 한국과 달라 그 부분만 신경 써서 외웠다. (시험에 나왔다.)


공부를 하고 예약해 둔 필기시험 날짜에 맞춰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갔다. DMV는 뭐랄까,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꽤나 기피 장소다. 한 번 가면 최소 한두 시간, 최악의 경우 한나절을 다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 나무늘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예약을 하고 가면 그나마 별도의 줄로 안내를 해 줘서 조금 빠르다. 


필기시험을 보려면 필요한 서류가 있다. 신분 서류와 거주 증명 서류 2종류. 신분 서류야 I-20와 비자 붙은 여권을 가져가면 되는데, 거주 증명 서류는 조금 어렵다. 미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되어서 서류랄 것 자체가 별로 없었다. 


보통 거주 증명 서류로는 유틸리티 빌을 많이 쓴다. 전기세, 가스비, 인터넷, 휴대폰 등등의 고지서가 날아온 주소에 살고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숙사에 살면서 저 중 아무것도 내지 않고 있었고 휴대폰은 프리페이드 (Prepaid)로 매달 고지서가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야 이런저런 일들의 주 계약자이니 서류가 있었지만, 내 이름으로 된 것 서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서럽..) 은행 계좌에는 나 역시 Autorized User로 올라가 있었고, 집 계약 서류에도 동거인으로 되어 있으니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두 개 서류로 접수대를 통과하고 번호를 받아 기다렸다. 인상적인 것은 직원들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나무늘보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빠르게 처리되지 않았는데, 언뜻 봐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을 처리하러 왔든, 모든 사람들이 종이로 증명 자료를 내미니 그 종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유효한 서류인지 직원이 일일이 확인하고 파일에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일이 빨리 처리될 수가 없었다. 같은 일을 반복하고 서류를 뒤적이는 직원들의 표정에서 지겨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 불안했다. 저 종이,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담당자는 잘 알고 있는 거겠지?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필기시험을 보러 왔다고 하니 한쪽에 있는 컴퓨터 자리로 안내해 줬다. 통과하고 다시 직원에게 가니, 이번에는 실기 시험을 보기까지 쓸 수 있는 허가증을 줬다. 캘리포니아 면허가 있는 동승자가 있다면 운전면허 연습을 할 수 있다는 허가증이다. 


이 허가증으로 실기 시험까지 연습을 하다 시험을 보러 다시 오면 된다. 


실기 시험을 보려면 허가증 외에 또 필요한 게 있는데, '자동차' 그 자체다. 한국 운전면허 시험장에는 차가 있지만, 미국에는 없다. 시험 볼 사람이 차를 구해가야 한다! 보통은 십 대 때 운전면허를 따니 부모님과 연습하고 부모님 차로 시험을 보겠지만 우리는 부모님 찬스는 이미 한국에서 써 버렸지.  


우선 시험을 예약한 후에 당일 차까지 빌려주는 연습 강사를 찾았다. 두 시간 정도 연습하면서 시험 코스를 알려주고 차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남편과 나 각각 한 사람씩을 고용했다. 


한 번 떨어지는 불운이 있었지만 아무튼 실기 시험에 통과했다. 실기 시험은 꽤 까다롭다. 교차로를 지날 때 반드시 양쪽을 확인해야 하고, 스탑 사인에서는 삼 초를 멈춰야 하고, 도로마다 다른 규정 속도를 잘 외워야 한다. 도로 연석에 너무 가까운 채로 회전하거나 너무 멀게 회전하면 점수가 깎인다, 등등. 


시험이 끝난 후에는 바로 사진을 찍는데 이때 찍은 사진이 그대로 면허증에 나오게 된다. 청록색 천을 배경으로 즉석에서 찍은 사진. 결과물을 보면 그 순도 백 퍼센트의, 보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적나라한 사진에 웃음이 나온다. 


카드로 된 정식 운전 면허증이 오기 전까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팔락거리는 종이로 된 임시 면허증을 받으면 DMV에서의 일이 끝이다.  

시험에 통과하고 받았던 임시 면허증

임시 면허증을 받고 얼마나 지나야 진짜 면허증이 오나? 그것은 알 수 없다. 90 영업일 안에 오지 않으면 연락을 하라고 한다. 기준이 '90 영업일'인 것을 보았을 때의 문화 충격이란.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가면 그 자리에서 사진 찍고 면허증 만들어주는 한국과 이만큼의 차이라니! 


서류가 없어서 면허증을 줄 수 없다고, DMV에서 보내온 편지

여름에 시험을 봤는데 겨울이 되도록 면허증이 오지 않았다. 대신 우편이 날아왔다. 그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멀쩡히 제출한 내 서류가 없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DMV에 문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50분을 기다리고 연결이 되지 않아서 트위터 계정에 물어봤다. (소셜 미디어로 문의하면 답이 빨리 온다는 것은 미국 생활에서 배운 팁이다.)


우편이 중간에 분실된 것 같다고 했다. 다시 DMV에 와서 서류를 내면 임시 면허증 기간을 늘려주겠다고 한다. 한참을 기다려 서류를 내고 기간이 늘어난 임시 면허증을 받았다. 다행히 이 서류는 분실되는 일 없이 잘 가서, 두 번째 임시 면허증이 만료되기 전에는 운전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작년에는 이때 받은 면허증의 유효기간인 5년이 지나 면허증을 갱신했다. 그 사이 미 정부는 보안을 더 강화한 '리얼 아이디'를 추진했다. 코비드 판데믹으로 기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언젠가는 이것으로 바꿔야 하니, 이 기회에 발급받았다. 


몇 년 사이 DMV는 놀라울 만큼 시스템을 개선했다. 서류도 이제 디지털로 업로드할 수 있고, SSN (Social Security Number)가 있는 사람이면 재발급이나 갱신을 DMV에 가지 않고도 할 수 있다. 나는 SSN이 없어서 직접 가야 했지만.


비록 디지털로 업로드해서 승인을 받은 서류였음에도 실제 접수 직원에게서는 거부당했지만, 그래서 집에 다시 다녀와야 했고 (이번에는 보험 서류를 가져갔는데 가입 서류는 안 되고 청구서만 된단다.) 종이산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많이 디지털화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갱신한 면허증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배달되어 놀라움을 더 했다. 지금 면허는 2026년까지다. 삼 년 후에는 또 얼마나 많이 바뀌어있을까? 그때는 나도 SSN이 있어서 집에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자동차가 없어서 세상이 좁아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