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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Jul 05. 2023

사막에서 내비게이션을 보지 말자

내비게이션 보다 사고 난 이야기_미국 보험으로 자차 수리하는 과정

차를 산 후 우리 삶의 질은 급격히 높아졌다. 친구들과 온갖 곳을 다니고 원하는 때 원하는 것을 먹으며 행복하게 지냈다. 그리고 2018년의 크리스마스 연휴가 다가왔다. 박사과정생이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놀 수 있는, 일 년 중 유일한 시간. 우리는 처음으로 3박 4일의 '로드트립'을 계획했다.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조슈아트리 국립공원과 모하비 사막을 뚫고 라스베가스로 가는 것이 1일 차 일정이었다. 그 후에는 그랜드캐년, 홀스슈밴드, 브라이스캐년, 자이언캐년 등을 차례로 돌고 집으로 오는 게 목표였다. 

 



샌디에이고 집에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까지는 세 시간이 넘게 걸리고, 라스베가스까지는 중간에 아무 곳도 들르지 않는다고 해도 다섯 시간 반이 걸린다. 오전에 출발했지만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을 겉핥기로 보고 나자 오후 세 시가 되어 해가 서서히 낮아지는 것이 보였다. 


비록 해는 지고 있었지만, '사막'이라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기후 지형을 만나고 우리는 더욱 신이 났다. 이국적인 조슈아트리의 모양과 해골 모양 바위를 보고 '다음에 다시 와서 제대로 보자!'를 외쳤다. 그러고는 더 유명한 '모하비 사막'으로 간다는 것에 들떴다. 




모하비 사막을 지날 때쯤에는 이미 해가 지고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사막의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가로등이 거의 없는 미국의 도로 상황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드물게 차는 지나가지만 검기만 한 사방과, 언덕에 가려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길, 낯선 곳에서의 야간 운전이었다. 


약간 긴장이 됐지만 그래도 신남을 이길 수는 없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하면 무엇을 먹을지 남편은 뷔페를 찾아보고 있었고, 나는 모하비 사막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 궁금해 내비게이션을 들여다보았다. 


줌 아웃을 해 우리가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는 걸 안 순간,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가가가각 하는 돌 튀는 소리와 사정없이 흔들리는 차! 내비게이션을 본다고 딴짓을 하다가 핸들이 기울어져서, 갓길 옆의 돌무더기에 앞바퀴가 닿으며 나는 소리였다. 


시속 70마일로 달리고 있었기에 돌이 차 옆면을 마구 강타했다. 남편은 '브레이크!'를 외치면서 핸들을 바로잡았다. 처음 돌을 맞을 때부터 너무 당황해서,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갓길에 댈 때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차에서 내려 보니 상태가 처참했다. 오른쪽 앞바퀴 휠이 긁히고 차바퀴 커버가 날아가고 없었다. 엔진룸에도 먼지가 잔뜩 들어갔다. 앞 범퍼와 조수석 문, 뒷문까지 긁힘 투성이었다. 

자잘한 흠집이 잔뜩 난 오른쪽 앞바퀴 휠. 
범퍼는 살짝 찢어지고 어마어마한 스크래치가 생겼다.

다행이었던 것은 주변에 지나가는 차도 없고, 가로등 같은 공공시설물도 없어서 다른 사고를 유발하거나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도 다치지 않았고 차도 많이 망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첫 사고라는 것이 너무 당황스러운 데다 기대해 온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울기 직전인 나를 남편이 잘 다독여줬다. 시동을 걸어보니 차는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사막 한가운데에서 정비소를 찾을 수 없으니 우선 라스베가스까지 가고, 가는 동안 차가 이상하면 그때 정비소를 찾자고 했다. 연휴이기는 하지만 어딘가에 방법이 있을 거라면서. 


거의 패닉 상태였던 나는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고 우리는 예정보다 한참 늦게 라스베가스 호텔에 도착했다. 



3박 4일 동안 차는 괜찮았다. 미국의 넓은 땅을 잘 모르고 약간 무리해서 넣은 일정 때문에 차는 단기간에 천 마일을 달렸지만, 안전하게 샌디에이고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긴 시간 운전한 여파로 피곤했지만 바로 다음 날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혹시 모를 문제가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서비스센터에서는 외관을 수리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때 배웠다. 엔진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바퀴 커버 같은 부품을 바꿔줄 수는 있지만, 외관 수리는 바디샵에 가는 것이라고 센터에서 얘기해 줬다. 


센터에서 소개해 준 바디샵에 갔는데 보험이 없을 경우로 받은 수리 견적이 우리 차 값을 넘어갔다. 허탈할 만큼 높은 견적에 그냥 보험사에 연락을 하고 고치기로 했다. 




보험으로 나의 차를 수리하는 방법은 이런 과정이었다. 


1. 클레임 접수하기

2. 바디샵 예약하기

3. 보험사에서 전화 오면 자세한 사고 경위 설명

4. 보험 담당자와 만나고 수리 맡기기

5. 수리 완료되면 디덕터블 내기


사고 경위와 수리가 필요한 부분을 적어내자, 주변에 있는 Geico 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바디샵들이 검색되었다. 구글과 Yelp 리뷰를 보고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에 예약을 했다. 


다음날, Geico에서 전화가 왔다. 더 자세한 것들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처음 가는 길이어서 내비게이션을 보느라 차가 흔들렸다. 길가에 있는 돌무더기에 차가 긁혔다고 했다. 상담사는 기물 파손한 게 있는지, 차 안에 미성년자가 있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이게 보험사의 '사람'과의 첫 연락이었다. 두 번째는 수리를 맡기는 날짜에 나온 보험사 인스펙터와의 만남이었다. 수리 당일, 바디샵 담당자와 보험 담당자가 함께 어떤 곳을 수리해야 할지 확인하고 금액에 동의했다. 


차를 수리하는 데에는 3주가 걸렸다. 한국의 속도에 비교하면 놀라울 만큼 느리다. 그마저도 3주 뒤에 찾아가자 제대로 페인트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일주일을 더 기다렸으니, 한 달이 꼬박 걸린 셈이다. 한 달 후, 소중한 나의 차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새 차처럼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차를 찾으며 $500의 디덕터블을 냈다. 운전할 때 딴짓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걸 배운, 비싼 수업료였다. 




장거리 여행에 사고에 보험처리까지,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우왕좌왕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운전 중 나의 잘못으로 사고가 난 적은 없다. 자꾸 멀쩡히 가고 있는 나의 차를 누군가 와서 박기는 했지만. 


나 혼자 잘못했기에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던 첫 사고와 달리, 다음 사고들은 다른 사람이 연루되었다. 보험 처리는 더더욱 복잡해지고 느려진다.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서도 그렇다. 맨발로 트럭에서 뛰어내려 소리 지르던 못된 운전자와 있었던 일, 다음 글에서 써 보려고 한다. 



(표지 사진: Photo by Bastian Pudill on Up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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