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유튜브 알고리즘이었다. 할 일 없이 침대를 뒹굴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한심한 주말, 유튜브 알고리즘은 오래전 '무한도전 가요제'를 추천해주었다. 형돈-GD 커플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든 나는 역대 무한도전 가요제 영상을 모두 섭렵한 후, '무한상사'-‘GD의 음악방송’-‘GD의 뮤직비디오’ 순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당연한(!) 결과로 GD를 사랑하게 되었고, 덕질이 시작되었다. 소녀팬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GD는 매력 부자였다. 다정함, 섹시함, 재치, 화려함, 음악성, 말투, 눈빛, 소년 미, 카리스마...... 나는 그가 출연했던 수년 전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찾아보면서 실실 웃고 있었다.
그중에서 GD의 제대 동영상을 보았다. 그를 취재하러 온 수십수백의 카메라 앞에서 그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모자를 벗었다 썼다 터틀넥 티셔츠로 얼굴을 가렸다 내렸다 했다. 정신이 없고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인 내가 그 앞에 섰어도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짧은 제대 소감을 간신히 전한 뒤, 차를 타고 떠났다. 떠나는 줄 알았다. 잠깐 이동한 뒤 바로 내리더니 이번에는 그를 보러 온 몇 천 명의 팬들 앞에 섰다. 이번에도 역시 어색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러분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제대할 날을 무척 기다렸어요. 그런데 지금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힘들어하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솔직한 말이 귀여웠다.
군입대 직전의 GD는 지치고 수척해 보였다. 한 콘서트 영상에서는 재킷 사이로 선명한 갈비뼈들이 모였다. 눈만 뜨면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좋은 집, 좋은 차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집에를 못 가는데.”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면 화려하게 파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겠죠. 현실은 호텔방으로 돌아와 어제 먹다 남은 제육덮밥을 먹어요.”
“너무 외로워요.”
댓글에서 팬들은 긴 기간 몇 개국을 돌며 일주일이 멀다 하고 콘서트를 하는 심각한 스케줄이 문제라고,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오랜 기간 연습생이었을 때, 그가 꿈꿨던 모습은 지금과 같은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었을 텐데, 이 순간을 향해 고생하며 달려왔을 텐데, 최고의 정점을 찍고 있는 순간에 왜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사람의 인생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안다. 커다란 성공이 GD에게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달리게만 했다는 것을. 엄청난 사랑과 함께 숨 막히는 관심과 안티들 또한 따라왔다는 것을.
그냥,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또 다른 GD를 꿈꾸며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 절박하게 도전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며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착각 아닐까.
꿈이라는 건 이루었을 때가 아니라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더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꿈에 가까워지려고 할 때 행복감이 점점 커지다가, 막 이룬 순간에 최고점을 찍고, 꿈이 일상이 된 후에는 다시 삶은 지루해진다는 것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행복을 찾아 헤매야하는 운명인 걸까.
“네가 없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 지용아, 널 위해 살아.”
한 다큐 영상에서 GD가 스스로에게 한 말이다. GD는 영리한 사람이니까 필요한 만큼 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러 돌아오겠지. 화려한 패션에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는 수줍은 웃음과 함께.
그의 컴백을 느긋하게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