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피부과 병원에 깄다가 바로 옆의 스타벅스에 들렀다. 고금리에 고통받고 있는 가정이라, 스타벅스 커피는 작년부터 거의 마시지 않는다. 대신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오늘도 원두를 사러 간 것이다.
지난 생일에 선물 받은 쿠폰이 남아서, 그것도 가장 큼직한 금액이 남아서 원두 18000원짜리를 사고도 여유가 있었다. 돈을 남길 순 없고 다 써야만 한다고 해서 익숙하고도 지루한 라테를 급히 추가 주문했다가, 계산대 앞에 프로모션 사진을 보고 바닐라티라테로 황급히 변경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뒤에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원하는 메뉴를 느긋하게 고를 수 있는 강심장의 사람과, 뒷사람의 시선이 마치 타들어가는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처럼 느껴져 일단 빨리 주문을 하고 마는 나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
뻔한 라테를 먹을 운명이었으나, 찰나의 순발력으로 참신한 음료를 주문해 기분이 좋았다.
"가지고 나가시나요? 종이컵에 드릴까요?"
"조금 마시다 나갈 건데요?"
"머그컵에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나가실 때 종이컵으로 교환 가능하세요."
이렇게나 친절한 스타벅스라니. 나에게 컵을 두 개나 쓰도록 해준다.
그런데 이건 내가 닦을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설거지 낭비 아닌가?
어차피 가지고 나갈 것을, 쓰지 않아도 될 매장 머그컵까지 써서 설거지를 늘리고 알바생을 힘들게 하고 물을 낭비하다니. 그냥 종이컵에 받아서 바로 나갈까? 하지만 약간의 거리를 걸어서 온지라 앉아서 한숨 돌리고 싶었다. 오늘도 나의 편리함이 환경 보호를 이겼다.
정부가 카페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시행한 지 꽤 지났다. 초기에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곳들도 많았는데(요즘은 카페를 많이 다니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스타벅스는 처음부터 깐깐하게 잘하는 것 같았다. '매장=머그컵, 테이크아웃=일회용 컵' 기준을 칼같이 지켰다.(또 개인 텀블러를 가져오면 300원 깎아주는 스타벅스의 정책도 좋았다. 빨대가 필요 없는 아이스 음료 뚜껑 리드를 선보인 것도 빠른 편이었다.)
원칙대로 하는 것의 단점은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매장에서 잠깐 마시고 나갈 경우, 그냥 종이컵에 줬으면 좋겠다. 뭐든 낭비하는 것은 보고 있기가 안타깝다.
이럴 땐 새로운 원칙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시고 나가는 경우, 일회용 컵이지만 빨간 스티커를 붙여 내준다거나.
어쨌거나 바닐라티라테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