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녀 Jan 18. 2023

인생의 목표

2021년 초의 기록

나는 인생의 목표가 단순하다.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 내 아이가 독립해 살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 옆에 살아 있어 주는 것. 그것만이 진실로 중요하고 절실한 단 하나의 목표다.

이렇게 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년 전에 가까운 가족 두 분이 돌아가셨다. 나의 아버지, 그리고 시아주버님이 같은 해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가족의 죽음이란 그 가족과 연결된 나의 일부도 함께 죽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누구나 노인이 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아팠다. 불안장애였다. 심한 불안과 우울이 몇 달 이상 지속되었고, 머리가 어지럽거나 심장 박동이 터질 듯이 빨라지곤 했다. 죽을 것 같은 공황 상태도 찾아왔다.

일상 생활이 힘들었지만 집에 혼자 있는 것은 증세를 더 심해지게 했다. 불안 증세를 안고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 나가 식은땀을 흘리거나,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기다시피해서 겨우 나가기도 했다.

몇 년만에 만난 친구와 스타필드 쉑쉑 버거에 앉아 울다 오기도 했고, 또 다른 친구를 만나서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친구의 먹는 모습만 바라보다 파리한 행색으로 걱정만 끼친 채 돌아오기도 했다.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힘들었다. 아프고 보니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었다. 살아있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고 나는 많이 좋아졌지만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다. 일 년에 두 세번쯤은 예고 없이 공황이 찾아오고, 옅은 불안이 일이주 이상 이어질 때도 있다. 그래도 한 달이나 두 달쯤 정말 아무렇지 않을 때도 있다. 많이 좋아졌고 살만해졌다.

근래의 한두 달도 컨디션이 꽤 좋았다. 마음이 편해서 밥도 항상 많이 먹었고, 맥주나 와인도 한 잔씩, 커피도 한 잔씩 마셨다. 밤마다 못다본 드라마들도 연달아 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난주에 공황이 찾아왔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급히 와달라고 전화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누워서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죽을 것 같은 숨막히는 느낌을 그저 생각으로 다독이며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 머리가 아파서 그러니까 좀 누워 있을게."

여덞 살의 사내 아이는 혼자 놀잇감을 찾아 놀면서 내 상태를 한 번씩 확인한다. 자기가 놀이에서 어떻게 무엇을 잘 했는지도 꼭 알려주러 온다.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다는 것을, 아이는 몰랐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아픈 것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텅 빈 것 같은 아파트에 울리는 혼자 노는 아이의 소리만 괴괴하게 울렸다.

일하다가 달려온 남편은 하얗게 질린 나를 보고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한다. 하지만 그 또한 겁에 질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나를 데리고,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아이까지 데리고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 오는 것으로 공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내 건강을 안심할 수 없다. 나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 어쨌든 숨쉬고 미소 짓고 아이에게 팔 벌려 수고했다고 반겨 줄 수 있으니 괜찮은 것이다. 더 욕심 부릴 것도 없다.

살기 위해 운동하고, 살기 위해 나를 다독인다. 살아라, 살아만 있으라.

세상에 모든 아픈 엄마들을, 응원한다.


---- 2021년 초, 공황 발작이 있었던 날의 기록


작가의 이전글 좋은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