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평범하고 주기적인 일상, 둘째 등원을 위해 유모차를 밀며 가는 길이었다. 잠자리 한마리가 날아와 우리 주변을 서성였다.
“어?”
어제 보았던 잠자리와 똑같은 고추잠자리였다. 늦가을, 며칠 전부터 초겨울 추위가 찾아온 하늘을 날아다니던 빨간 잠자리. 어제 아이가 ‘잠자리다!’하며 외치는 통에 멈춰서서 한참을 바라봤던 잠자리. 그때도 주변 화단에 옮겨 가며 앉아 마치 우리 아이 보란듯이 멈춰있길래 아이에게 그리움반 슬픔반 담아 건넨 말이 있었다.
“할머니가 잠자리가 되어 지민이 보러 오셨나.”
그런데 오늘 나가자마자 그 길에서 또 마주친 잠자리. 물론 어제의 그 아이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반가움과 신기한 맘으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랬더니 잠자리가 나풀나풀 날아와 유모차 위 내가 손을 올린 그 위에 딱 앉는 것이 아닌가? 벌레를 원래 무서워하는 나는 당황해서 뒤로 물러났지만 잠자리와 정면으로 딱 마주치는 신기한 경험을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여기 잠자리 앉았어!” 하는데 또 나풀나풀 잠자리는 날았다. 지민이 주변을 한바퀴 휘 돌고 화단 너머 나무 밑 흙위에 안착했다.
아이는 금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잠자리 보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지 보챘기에 유모차를 끌고 다시 어린이집을 향하며 나는 생각했다.
‘진짜 어머님인가.’
아이를 무사히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걸어오며 잠자리를 찾아 보았다. 아직 그 곳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잠자리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어머님, 지민이 보고 싶어 오셨어요?’
나는 잠자리에게 마음 속의 말을 건네었다.
‘지민이, 다현이 잘 크고 있어요. 어머니’
바로 옆동에 살아 거의 매주 찾아가서 놀았는데 코로나 걸리기 몇주전에 딱 자주 못 뵈었고 코로나 걸리시고, 몸이 아파지시면서 아이들을 데려갈 수 없어 못 보여드린게 이렇게 내내 죄송한 일이 될줄 몰랐는데. 나는 눈물을 훔쳤다.
오실거면 먹이사슬의 최강자 같은 독수리 같은거로 오시지. 잠자리라니.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공기 좋은 산밑 아파트라 여기 잠자리의 천적인 새가 얼마나 많은데. 나는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깨달았다. 어머님 성품에 분명 독수리가 아니라 잠자리로 선택하셨을 것이다. 천성이 남 피해 안주고 무해한 날갯짓으로 조용히 날면서 따뜻하게 가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잠자리가 자신에게 더 어울린다며 고르셨을 것이다. 소박하고 소탈한 걸 더 좋아하셨던 어머니. 나는 이별 후 시시때때로 실감하고 마는 어머님의 부재에 자주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움과 감사함, 존경심 같은 것들이 뒤섞여 밀려오면 잠시 눈물을 훔치고 멈춰서는 경우가 많은 날들이다.
요즘 가을 하늘이 참 청명하고 높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계절. 이렇게 선선하고 날씨 좋은 날 가신 우리 어머님은 늘 따뜻한 사람이었다. 며느리인 나에게도 품 넓게 포옹해 주시던, 그러면서도 늘 선을 지키며 배려해주시던 그런 어른.
글을 쓰기로 하면서 어머님이 가장 멋있었던 순간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어머님이 가장 빛나셨던 때의 나의 기억은 언제일까 생각을 하자 곧바로 떠올랐다. 바로 어머님의 퇴임식 영상을 보았을 때였다. 우체국 보험 설계사 1호 였던 어머님은 40년이 넘게 근무하신 공로를 인정받아 퇴임하실 때 우체국장이 참여한 퇴임식과 공로패까지 받으셨다. 남은 동료들을 위한 퇴임기념 연설을 형님이 찍어오셨는데 그걸 보고 난 어머님이 참 위대한 삶을 사셨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았기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하셨던말. 서운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으셨던 강직한 어머니. 본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들으셨던 그때도 그렇게 덤덤히 같은 말을 되뇌며 오히려 아주버님을 위로했다던 우리 어머님.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쉽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 그것이란 건 조금만 나이가 들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많은 핑계와 자기 합리화를 하며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니까. 그래서 그때 40년 넘게 일하신 직장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연설하시는 모습이 며느리인 내 눈에도 참 멋졌다. 오히려 다른 직원들이 아쉬움에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어머님은 노래도 한 곡 부르시며 참 의연하셨다고.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며 사셨는지는 사이 좋은 삼남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신을 존경하고, 늘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들은 믿고 있다. 어머님의 사랑을 돌려주는 길은 어머님만큼은 못하더라도 성실하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할 도리 다하고 가족들 위하며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는 것을 늘 새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직장에서는 그렇게 강한 분이시지만 가족에겐 한없이 따뜻한 어머니이셨다. 가족의 기쁨이 곧 당신의 기쁨이라고 늘 몸소 보여주시던 우리 어머님. 나는 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형님과 아주버님과 함께 병원가는 차 안에서 말했다. 어머님이 내가 본 가장 좋은 어른이었다고. 정말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나는 거짓을 잘 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 평생 온 마음을 다한 말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제일 좋은 어른. 나이가 들어가며 더 느낄 수 있겠지. 그런 어른을 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걸. 항상 이별을 마주해야만 깨닫는 어리석은 인간의 불완전함이 원망스럽다.
“엽서 한 장 써 붙여서 구리구리 말아서 우체통에 넣자-!:”
하교한 첫째가 둘째 손을 잡고 쎄쎄쎄를 가르쳐 주며 노래를 불러주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이 첫째 어릴 때 마주 보고 불러주셨던 그 노래였다. 이젠 그걸 첫째가 둘째에게 불러주다니 흐뭇하면서도 가슴이 아렸다. 네살인 둘째에게 할머니 기억은 없겠지만 조건 없이 깊게 사랑해준 마음과 온기만은 저 무의식 속에 분명 남아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모두의 가슴 속 따뜻한 온기와 사랑으로 남아있을 우리 어머님.
나는 어머님의 영정 앞에서 약속했다. 어머님 처럼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올해 또 책이 나온다. 어머님께 드릴 이 헌정글을 꼭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을 추억하고 기리며 하찮은 재주를 부리는 며느리가 꼭 한 편 남기고 싶은 그리움이 있어서. 작년에 발간한 쓰며:쉬며 책을 내 부분을 꼼꼼히 다 읽었다며 ‘잘썼더라.’ 하고 칭찬해주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사랑을 담아 이 글을 어머님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