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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4. 2021

서른여섯 번째 날.

다다른 그 땅, 포르투갈

A said : 

 

7.28 Lisbon PM 17 : 56


 한껏 게으름을 부리다 느지막이 일어난다. 시내에서 이런저런 볼일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 T형은 먼저 리스본을 떠난다. 해가 다 진 저녁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형을 배웅하고 홀로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기록이 될 이 글을 쓰기 위해 테라스의 책상에 앉는다. 난간 아래로 멋들어진 식당에서 촛불을 켜고 근사한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한 손에 턱을 괴고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T형의 별났던 제안에 평소와 같이 ‘응, 그러던가’ 별생각 없이 내뱉었던 대답으로부터 시작된 이 날들이 끝나간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맡아보는 바깥공기를 마시는데 눈 앞에 보였던 암스테르담의 푸른 바다가 떠오른다. 여느 때와 같이 멍하니 그 바다를 바라보다 씩 웃으며 ‘정말 많이 다른 곳에 왔구나’ 싶었다. 시리게도 파랗던 바다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뗀 이후의 시간들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했고, 생각해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여행길에서의 새로운 경험이나 인연들은 다르게 생각하면 오히려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애초에 여행이라는 행위가 일상을 보내던 장소와는 전혀 다른 곳에 발을 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타지에서 느끼는 생소함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여정은 당연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고행 덕분인지, 보통 남들이 쉽게 해보지 못한 경험에 대한 뿌듯함인지 정확히 한 가지로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다. 그 많은 이유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명확하게 생각나는 한 가지는 ‘자전거’이다. 늘 여행을 할 때면 ‘이방인’이 된 느낌을 좋아했다. 일이든 사람이든 항상 신경을 써야 하고 생각을 해야 하는, 손길이 닿고 눈길이 가는 모든 것들과 항상 관계가 맺어지던 일상과는 다르게, 여행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새로운 장소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을 즐겁게, 재미있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골머리를 썩힐 일이 잘 없다. 이런 ‘이방인’의 특권들이 있는가 하면 역시 그만의 한계도 있기 마련이다.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친구를 사귀고 그곳의 풍경들을 눈에 익힐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그곳이 삶의 터전인 그들처럼 그곳을 온전히 누릴 수는 없다. 잠시 머무르는 여행객은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 


 기차나 버스, 비행기로 대변되는 ‘이방인’의 수단과 ‘자전거’는 조금 달랐다. 대중교통보다는 느리지만 발보다는 빠른 애매한 속도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 완벽하게 이질적인 ‘이방인’과는 차이가 나는 ‘불완전한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큰 도로 대신 골목 사이를 쏘다니며 일상을 보내는 그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차 속의 창문으로만 마주하다, 그들이 밟고 다니던 땅에서 훨씬 가까워진 페달 위에서 만나는 만큼 그 눈들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었다. Warmshower에서 만난 친구들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환대해주는 그들의 일상에 작지만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었다. 매일 아침이 주행길의 새로운 시작이던 우리와는 다르게 일상을 맞이하는 그들을 배웅해 줄 수 있었다. 


 일상 속의 ‘이방인’이랄까,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일상들에게 도움을 받고 교류하며 보낸 시간들은 겪어 보지 못했던, 그리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경험이었다. 새로운 일들의 연속에 마주해 역시나 지구 저 편에 잠시 일상을 놓고 왔던 터라, 평소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무언가 느낄 것이 많겠지, 지나온 날들의 혹은 앞으로의 날들에 의미 있는 이정표 정도는 세울 수 있겠지 어렴풋이 기대하던 출발할 때의 마음에 얼마나 대답이 됐을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당장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어느 날 머릿속에 ‘!’ 느낌표 하나 떠오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정도일까. 다만 깨달음, 기쁨, 감동,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던 고통까지 그 무엇이 되었든 페달 위에 있었던 날들이 그 자체로도 너무 좋았다는 사실 정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다. 

T said : 

 

DAY 34

-

어젯밤에 10시가 되니 졸음이 쏟아졌는데, 

찬희와 라면을 먹고 12시가 넘어 잠에 들었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5시 9분에 눈이 떠졌다. 

물론 결국 침대에서 일어난 건 10시가 넘어서였지만..

자전거를 보내고 

그리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쇼핑도 하고 했는데,

뭐 엄청 좋거나 편안하거나 행복하진 않다.

물론, 내일부터 다시 자전거를 타야 된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금세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도시가 싫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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