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함을 취할지, 부족함을 취할지는 선택에 달렸습니다.
“두어 칸 집, 두어 이랑 전답,
서적 한 시렁과 거문고 하나,
햇볕 쬘 마루와 차 달일 화로 하나, 멋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하다!..”
지나치게 재산만 모으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김정국.
조선 중종 때 판서를 지냈던 문신으로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넉넉하게 먹고
땅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새들의 지저귐과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라는 자신의 글귀대로
소박하고 작은 것에 만족했습니다.
조광조의 스승이자, 조선시대 참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김굉필의 제자였던 그는
황해도 관찰사를 지내다 기묘사화로 삭탈관직돼
경기도 고양에 내려가,
스스로 ‘팔여거사’라는 호를 지어 부르며 생활했는데요,
학문을 닦고 책을 쓰고
후진을 교육하며 20여 년 동안 여덟 가지 넉넉함.
‘팔여’(八餘)를 누리면서 청빈을 즐겼습니다.
봄날에는 꽃을,
가을에는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에서 넉넉한 향기를 맡는다는
여유까지 합해서
일곱 가지 여유를 이야기한 뒤,
끝으로,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기에,
그 ‘즐김’까지 더해서
여덟 팔, 넉넉할 여,‘팔여’(八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의 친구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진수성찬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 치고 잠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다 듣고도 부족하고...
세상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
하나 하나 떠올려보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넉넉하게 즐길만한 ‘사소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다만,
넉넉함을 취할지, 부족함을 취할지는
선택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