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는 다크 넛지가 있어선 안될 텐데.
오늘은, 만화, 특히 웹툰에 대해 언급한 김에
꼭 '디지털 드로잉'에 대한 우려를 공들여 표해보고 싶습니다.
하하 이렇게 말하면 많은 미술 선생님들에게 반대적인 우려와 질타를 받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디지털 드로잉 수업을 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많으실 텐데요. 초등을 대상으로도요. 그런데 사실 초등 저학년 이하의 학생들에게 디지털 그림을 그리게 한다는 것은 정말 많은 우려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별로 추천해서 수업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또한 그런 수업에 관심을 보이는 유초등 어머니들은 우선좀 말리지요. 왜 그럴까요?
디지털 기기에 너무 많이 노출된다는 단점, 그것은 미술의 영역이 아니니 다음번에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논하겠습니다. 미술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발달과 손기술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일 년 일 년의 성장이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것이 안타깝습니다. 디지털 펜을 사용해서 그리는건 손가락 탭만 조금 하는것과는 좀 다를 것이란 생각이 혹시 드시나요? 조금은 더 낫겠지요. 하지만 안 그래도 아이들이 그림그리기나 조형활동을 잘 하지 않고 노는 요즘 같은 시대에 디지털로 그림을 그리게 되면 손의 섬세함을 발달시키는 데 굉장히 큰 문제가 됩니다. 아직 소근육 발달이 부족한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에게는 치명적이지요.
저는 나름의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저학년만 해도 해마다 한 반의 학생 수 이상의 아이들을 보곤 합니다. 확실히 체감될 정도의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실제 상담을 통해 조사해보면,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노는 아이와, 패드를 만지고 노는 아이의 손끝의 야무짐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패드를 주로 손가락으로 탭하며 노는 아이와, 패드에 펜드로잉을 하는 아이, 그리고 종이를 주로 가지고 노는 아이의 차이가 '모두'있습니다.
패드를 탭만 하는 단순 반복 동작이 아이들의 소근육 발달이나 뇌와 손의 협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부모님들께서도 직감적으로 경계하고 걱정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드로잉은 '그림을 그린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환영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 드로잉은 쉽게 그림을 그리게 해 줍니다. 아이들은 이 '쉽게'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어른들은 '우리 아이가 그리기 활동을 한다!' 에 기뻐하시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땐, 또한 경험해 본 바, 이것은 경계해야 할 함정입니다. '쉬운 길'이 무조건 '좋은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쉬운길이 좋은길은 아닐 수 있다.
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어릴때부터 패드에 펜 드로잉의 즐겨 하던 아이들은 선끝의 맺어짐이 특히나 약하다는 것이 선에서 드러나, 그리기를 지도할 때 날림으로 선을 쓰려 하지 말고 선을 더 잘끝맺어 보라고는 조언을 계속 해야합니다. 집에서도 계속 선 끝을 잘 맺어 그리는 연습을 해주면 좋을 텐데, 아이가 집에서는 디지털 드로잉을 하기 때문에 이를 의식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잘 교정되지 않곤 합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디지털 드로잉이 선을 '쉽게'그을 수 있도록 자동 보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뿐 아니라 디지털 드로잉은 손 그림의 어려운 점을 많이 보완해줍니다. 디지털 드로잉 중 필압이 라고 하는 영역이 있는데 컴퓨터 설정으로 연필에 압력을 조절 해 주는 영역 입니다. 그것을 직접 손으로 조절 하지 않고 연필의 상태 설정창을 클릭해 범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굵은 선 부터 얇은 선까지를 다양하고 쉽게 쓸 수도 있고, 반대로 선의 처음부터 끝 까지를 모두 한결같은 두께로 그리게 해주는 설정도 가능합니다.
또한 잘못된 곡선과 직선을 스스로 바로잡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곡선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근육과 관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직선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바른 자세도 취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을 복사해서 붙여넣는 기능도 있어서 아이들은 대칭을 맞춰 그리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와는 다르게, 실제 종이에 그리는 손그림에서는 몇배로 더 다양하고 섬세한 손 동장이 요구되곤 합니다. 손 끝이 섬세하고 야무져질수록 단계적으로 더 다양하고 어려운 난이도의 그림에 도전할 수 있게됩니다.
저희 학원에서는 연령별, 발달 단계별로 건식재료와 습식재료를 단계적으로 구분해 사용하며, 아이가 섬세한 손 동작 조절을 통해 굵은선부터 얇은선을 모두 쓸 수 있게 지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곧은선, 진한선, 연한선 등을 손 힘으로 다양한 선을 적재적소에 맞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직선과 곡선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롭게 쓰도록 가르칩니다. 곡선을 잘 못 그리는 아이들은 노력을 기울여 곡선을 연습합니다. 직선을 잘 못 그리면 직선을 잘 그리기 위한 방법을 찾고 배우기 위해 요령을 시도하고설명을 경청합니다.
그런데 디지털 드로잉은 이 모든것들이 너무 쉽게 해결됩니다.
또한 꼼꼼히 색칠을 하며 손에 힘을 키우는 영역에 있어서도 디지털 드로잉은 매우 손쉽습니다. 디지털 드로잉은 페인트 툴이라는 것으로 그림의 색을 부어 입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손수 원하는 위치에 맞춰 채색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줍니다.
디지털 드로잉은 아이가 손 끝에 힘을 주어 지우개질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망치면 휴지통에 넣어버려 지워 버리면 되니 지우개질을 크게 할 일도 없습니다.
그저 몇가지 기본적인 기능만을 나열해 봐도 디지털 그림은 손 그림에 비해 많은 것이 자동화 되어 있습니다. 손 그림의 귀찮은 부분, 섬세해야 하는 부분들을 보기 좋게 대체해 주지요. 혹시 여러분은 이것이 좋게 느껴지시나요? 아니면 저와같이, 아이들이 접함에 있어서는 좀 우려스럽게 느껴지시는지요?
그렇다고 아예 디지털 그림은 다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디지털 드로잉에 빠져서 미술을 본격 해보겠다고 온 아이들의 부모님께는, 위와같은 우려도 말씀 드리지만, 그래도 아예 안 그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을 함께 드리곤 합니다.
다만, 평균적으로 초등학교 이학년 까지는 소근육 발달이 활발이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그 이전에 디지털 그림을 너무 일찍 접해 버리면 위와같은 그리기 활동을 비롯해 미술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많은 발달 효과들을 놓치게 됩니다.
초등 2학년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섬세한 손기술은 계속해서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디지털 드로잉을 빨리 시작하게 될수록, 기술 발전의 기회가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으로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의 인간적인 노력과 학습, 기술적인 연마에 더 큰 의미가 담기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서 기술적인 학습 이상으로 참 좋습니다.
이에비해 디지털 드로잉은 쉬운길을 찾게 만들고, 프로그램내 툴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아직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들의 무게를 내려놓고 쉬운 길만 택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쉬운 선택지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그려지는 것을 '재미'로 인식하기 되면 한동안 그 재미에서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최대한 오래 손그림을 그리고, 최대한 늦게 디지털 그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미술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때 즈음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디지털 그림을 그려 본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손 그림을 그리다가 디지털 그림으로 넘어가는 것은 쉽지만, 디지털 그림을 그리다가 손 그림으로 넘어가는 상대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화지에 그리는 손그림이 드로잉의 기술적인 영역에 있어서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웨어러블 디지털 기기가 앞으로 더 상용화되면 이제 우리는 디지털 기기와 점점 더 친숙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의 편리한 장점에 가려져 아날로그적인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을 아무 생각없이 놓쳐버려선 안됩니다.
아날로그적인 도구를 사용 하는 미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기술의 조절, 인내심의 성장을 요하는 수 많은 과정들은 이제 앞으로는 교육적이고 교양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다가올 AI시대에 더욱 긍정적으로 부각될 것 입니다.
그에비해 디지털 드로잉은 AI드로잉과 그 장점이 별반 다르지 않고, 정서적인 부분에 끼치는 영향도 적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성장한 후 필요성이 있을 때 다루어도 늦지 않습니다.
발달 단계와 미술에 대해 한가지 더 생각거리를 얹자면,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땐 커다란 벽돌 모양의 상자를 가지고 놀다가 점 클수록 소 근육 발달을 위해 점점 더 작은 블록을 가지고도 여기도 노는 것, 그리고 종이접기를 쉬운 접기에서 점점 더 어려운 것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이, 그림도 학년이 오를수록 더 섬세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컨트롤 할 줄 알게 되어야 하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한 무시는 결국 당장은 느끼지 못해도 훗날 티가나게 됩니다. 이 디지털 드로잉이라는 것이 섬세함을 요하는 부분들을 모두 손쉽게 해 줌으로써 오히려 그런 섬세한 그리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이 모든 걱정은 그림을 그리려 하는 아이에 해당되는 문제이고 아이가 어느 순간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는다면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는 것보단 디지털 그림이라도 그리는 것이 흥미를 이어나가는 측면에서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차선책 같은 의미로는 괜찮습니다. 안 그리는 것보다는요. )
웹툰 작가를 꿈꾸고, 이미 디지털 드로잉의 맛에 빠져 패드를 붙잡고 사는 아이에게까지 디지털 드로잉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디지털 드로잉의 우려스러운 점을 아이에게도 전달하고, 웹툰을 좋아하는 아이도 손그림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합니다. 적어도 학원에서 만큼은요.
또한 같은 맥락에서 미술학원 선생님들께는 유초등에게 디지털 드로잉이 꼭 정규반으로까지 필요한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과연 그것이 마케팅이 아니라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경험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선생님 자신이 디지털 기기를 익숙하게 다룰 줄 알기 때문에 가르치시려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또한 수채화나 소묘보다 단기적으로 쉽게 익히고 아이들의 특강으로 활용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에 일부러 배우시는 선생님들도 많으신줄 압니다. 저는 한두 번의 체험으로, 혹은 직업체험의 의미로 디지털 드로잉 수업을 하는것에도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직업체험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그렇게 경험해 본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님을 졸라 패드를 손에 넣게 되는 상황을 연결해 상각해 본다면, 이것도 그리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불안세대와 다크넛지.
제 주장에 대해 이러한 생각에 확신을 얹어준 화제의 신 작 두 책을 소개하며 근거를 뒷받침 해 봅니다.
2024.07.31. 발간된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 :
이 책에서는 현대 사회, 특히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 중심의 양육 방식이 Z세대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이트는 이러한 디지털 환경이 젊은 세대의 두뇌를 재구성하면서 불안과 정신 건강 문제를 유발했다고 주장합니다.
2024.06.17. 발간된 패드릭 페이건의 [다크 넛지]:
이 책 또한 현 세태가 아이들에게 끼치고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설득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어 둡니다. 이 책의 내용들을 예로 삼아 기업의 이익이나, 과학의 발전이 아이들에게 합리적이고 교육적인 방향으로만 다가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사용하고 있는 패드, 그안의 수 많은 교육적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에게 은근슬쩍 무분별하거나 오히려 해로운 설득들을 시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특히 교육계에서 우리 선생님들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중에서도 아동의 발달을 위한 수업을 하려는 많은 선생님들은 더욱 이에 대해 고민하고 따져봐야 합니다. 좋아 보이는 수업, 마케팅적으로 유리한 수업, 수완 좋은 수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므로 제대로 된 기준으로 수업 프로그램을 짜면 좋겠습니다.
*급변하는 AI시대, 미술 전공자의 현직 전문가 다운 시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