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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하는 명랑 11시간전

난 지금, 소리없는 아우성

일주일 내내 앓습니다.

내 몸뚱아리가 이제는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수업을 제외한 모든 활동들이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만두겠다는 학생들 덕분에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라는 마음의 소리가 나를 괴롭힙니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건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질문처럼 어리석인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원인을 찾아 끝도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댑니다.

그리고 그 답은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야.'로 귀결됩니다.

그러면 또 '내가 뭐 어쨌다고?'라는 억울한 마음이 울부짖습니다.


밑바닥으로 한없이 내려앉은 마음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발도 닿지 않은 채, 허우적대는 느낌입니다.

뭘 해야겠다는 '의지'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

구원의 손길조차 거부하며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나를 응원했던 내 목소리들은 대체 어디로 자취를 감춘 걸까요?

순식간에 무너진 나를, 어떻게 일으켜 세워야 하나요?

그간의 나의 노력들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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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표(標) ㅅ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哀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이 깎이는 대로

억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生命)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뜰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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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내 안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듣다가 문득, 유치환의 시가 생각이 났고

시를 옮겨 적다가 잠시 행복해지기도,

끝내 바위가 되기도 하는 나는,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커서의 깜빡임을 사랑하는 나는,

계속 써야 한다고..

그러면 완전히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나의 멱살을 가만히 붙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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