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미약 혹은 주취감형 인정에 대해
조두순 사건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보통 술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가 감형되는 대표적인 이유는 주취로 인해 이성적인 사리분별 능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이 되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형법의 책임주의 원칙, 즉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을 때에만 형벌을 부과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은 개념적 구분을 근거로 감형 규정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술을 마셨지만 '범죄의 의도 없이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가 존재할 수 있고 이는 '범죄를 계획 혹은 의도'하면서 술 마신 경우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두순 사건을 비롯하여 소위 국민정서적 측면에서 납득할 수 없는 케이스들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여전히 사회적으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볼 때, 단지 국민정서에 어긋남이라는 말속에는 사실 우리의 도덕적 직관과 관련된 지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읽으며 다음의 구절을 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무지의 원인이 행위자에게 있다면 무지 때문에 한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을 받는다. 술에 취해 범죄한 사람에 대해 형벌을 두 배로 가중해 처벌하는 것이 그런 예다.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스스로 술에 취하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도 자신을 술에 취한 상태로 만들었고, 그렇게 술에 취한 것이 무지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법에서 정한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아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그러한 법 규정에 무지해 죄를 지은 때도 처벌을 받는다. 그밖에도 부주의로 무지해 범죄 했을 때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지는 그의 책임이므로 처벌받는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3권 5장 중에서
술에 취한 사람은 본래 평상시 자신이 인지하고 있었던 사회규범에 대해서 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지'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무지 상태에 대한 관점에 있어 오늘날 현대의 법보다 더 탁월한(!) 해석과 근거를 보여주는 것 같다.
(1) 개인적 차원: 술에 취해 범죄한 자는 이미 자신이 술 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2) 사회적 차원: 주취 상태에 처한 특수한 상황과 별개로, 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술에 취해 범죄한 사람에게는 이미 그런 상태로 도달하지 않도록 선택할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죄한 사람에게 그가 이미 한 시민 사회(폴리스)의 구성원이며 그에 따라 마땅히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를 상기시킨다. 가령 자신이 술에 취했을 때 주사가 심하거나 과거 비슷한 사고를 범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자제했어야 한다. 그의 논거에 따르면, 설령 술을 처음 마시고 취하게 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공동체 전체의 선과 질서유지를 위해서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선택(예를 들어 술에 심하게 취하지는 않는 정도로 음주)할 영역이 존재함도 주지해야 한다고 말했을 것 같다.
다소 말이 어려울 수 있지만, 이 철학자는 이미 술을 마시고 취한 그 사람 안에 충분히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었던 선택의 가능성(자유의지)이 충분히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단지 개인 차원에서만 사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시야에서 책임의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 이런 뜻에서 형법의 책임주의 원칙은 한 개인이 처할 수 있는 상황의 풍부한 맥락은 제거하고 순전히 논리적인 측면으로만 환원시켜 우리를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술 마시기 전에 범죄를 의도했었는지 여부는 당사자만 알 수 있는 1인칭적 경험의 세계이며, 그 술취한 당사자도 '술취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는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다스리는 우리의 법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