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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 Jan 28. 2023

내 안에 세 가지 다른 얼굴들2

'사도'와 '햄릿'으로 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프로이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아버지와 아들의 불편한 관계를 프로이트 선생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에서 따온 개념으로 작품 속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한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속에 이성의 부모를 좋아하는 감정이 존재하다고 여겼고,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명명했었지요.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적인 발달단계가 욕망을 느끼는 신체기관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성인기라는 단계를 제시했죠. 갓난아이였을 때는 입으로 빠는 행동으로 만족을 느끼고, 좀 더 성장하면 배설의 쾌감을 느끼며, 그 후에는 성적인 데에 관심을 갖는 남근기가 찾아온다고 봤죠. 바로 이 남근기 때, 아들은 어머니를 연인으로,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 시기 남자아이는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와 경쟁을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얼마 안 가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불안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혹시 아버지가 자신의 남성성을 거세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한다는 거죠. 그래서 아들은 전략을 바꿉니다. 저 거대한 아버지를 적이 아니라 자신의 모델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닮아가기로 말이죠.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차츰 사회화된다는 것이 프로이트 선생의 이론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들이 무의식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경쟁심과 적대감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반대로 아버지가 아들의 사회화 모델이 되어주기는커녕 아들을 경계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마 둘 사이에는 터지지 않은 지뢰처럼 위험천만한 관계가 만들어지겠죠. 아들이 미성년이고 미약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아들이 장성하고 아버지가 빈틈을 보이며 둘 사이에 팽팽한 힘의 균형이 맞춰지면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겠지요. 우리 고전 소설에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홍길동이 장성하자마자 집을 떠나 아버지의 애첩을 죽이고, 조정을 공격해서 아버지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희대의 사건은 신화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역사 속에 존재하는 실체적인 사건이 있으니까요. 그것도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아들을 죽이기 위한 치밀하고 의도적인 계획이 있었으니까요. 바로 사도 세자와 영조의 이야기입니다.

  사도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가 죽음을 맞이하기 며칠 전, 사도가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사도의 생모이자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 아들을 죽여달라고 영조에게 간청했다고 하죠.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에는 이 장면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장대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 몇몇 무사들을 이끌고 대전에 잠입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죠. 결국 며칠 후 사도는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합니다.

  누가 대체 사도를 죽인 걸까요? 역사적 실체야 어찌 됐든 영화 ‘사도’는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가 핵심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둘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영조는 처음에는 아들을 끔찍하게 아낍니다. 아들을 위해 밤을 새워 직접 책을 쓸 정도였죠. 그런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젖도 떼지 않은 아이에게 글자부터 익혔으니 말이지요.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구강기나 항문기도 벗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엄격한 초자아를 갖출 것을 영조는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초자아로 똘똘 뭉친 아버지의 기대를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친어머니 영빈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예법을 강요하는 궁궐의 법도 때문에 마땅히 누려야 할 어린 시절 놀이의 기쁨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부모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쉬웠으나 그는 오로지 스승들과 유학 경전들을 공부해야만 했죠. 그렇게 심리적인 결핍이 누적되고 빈곤해진 자아가 초자아를 받아들이기는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 영조로 인해서 사도는 제대로 된 사회화의 과정도 겪지 못합니다. 영조는 사도가 십대 시절부터 잦은 선위 파동을 일으키며 사도의 불안만 가중시켰습니다. 걸핏하면 양위를 하겠다는 아버지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하게 지낼 수가 없었지요. 그럼에도 사도는 성인이 되기까지 아버지 영조를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성한 뒤부터 사도는 달라졌습니다. 적극적인 반항이 시작된 것이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희생양, ‘사도’     


  사도는 아버지 영조가 싫어하는 일들, 기생과 점쟁이를 궁으로 불러들이고 무당과 함께 굿판을 벌입니다. 공부는 뒷전이고 사냥을 가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잡기에만 몰두하죠. 심지어 국상을 당할 때조차 술을 마십니다. 초자아가 형성되기는커녕 억눌러 왔던 욕망이 고삐 풀린 채 마구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의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옷 입기를 거부하는 의대증이 나타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해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죠. 그의 시중을 들다가 죽은 궁인만 백여 명이 넘고, 자신이 아끼던 애첩마저 죽이기까지 하죠. 

  프로이트 선생의 이론을 따른다면, 사도는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고, 그중에서 특히 남근기 때에 아버지로부터 거부당한 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역사적인 사실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사도가 끝내는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고 했던 걸 보면 그는 오이디푸스기를 통과하지 못한 채, 아버지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제거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이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심리학자들은 사도가 반사회성 성격장애 내지는 경계선 성격장애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사랑을 베풀지 못한 어머니 사이에서 그만 괴물로 성장해 버렸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우울한 덴마크 왕자, 햄릿     


  아버지와의 갈등이 교묘하게 은폐된 경우도 있습니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그 주인공이죠. 다들 알다시피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숙부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가 유령으로 나타나 복수를 부탁하면서 시작합니다. 선왕인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어 어머니마저 차지한 몰염치한 숙부. 그는 햄릿마저 영국으로 보내 그곳에서 살해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죠. 자, 그렇다면 햄릿의 선택은 당연히 복수를 감행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햄릿은 기회가 충분한데도 복수를 지연시킵니다. 홀로 기도하는 숙부를 그대로 살려두기까지 하죠. 어째서일까요?

  힌트는 햄릿과 어머니 거트루드의 대사에 놓여 있습니다. 마치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새로 만나는 걸 질투라도 하듯 햄릿의 대사는 과격합니다. 몇 마디만 한 번 살펴볼까요?     


  “그녀는 먹을수록 식욕이 더 늘어나는 것처럼 아버님께 매달렸지.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생각을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땀 냄새 나고 기름이 질질 흐르는 이 침대에서 욕정에 빠진 돼지처럼 음탕하게 사랑을 나누는 게 고작이겠죠.”
  “오, 나쁜 쪽은 버리고 나머지로 깨끗하게 사세요. ···· 그러나 삼촌 침대로 가면 안 됩니다. 덕이 없어도 그걸 몸에 걸쳐라도 보세요.”     


  자, 이런 말들이 어머니를 향한 대사입니다. 아무리 분노했다고 해도 지나친 언사임에 틀림이 없죠. 작가 셰익스피어는 어째서 햄릿에게 이런 과격한 말을 내뱉게 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이때 햄릿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쳤다는 설정은 초자아의 기능은 줄고, 원초아의 수준은 폭발하는 증가한다는 거죠. 그러니 햄릿의 대사는 원초아가 직접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프로이트를 따른다면 햄릿은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를 이성으로 여겼던 것이지요. 배우 글렌 클로즈가 연기했던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여성으로서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연출된 것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입니다. 

  정리해서 보자면, 햄릿은 어머니를 이성의 상대로 여기며 아버지의 세계를 거부하거나 적대시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빠져있었고, 그런 까닭에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게 일종의 공범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숙부에 대한 복수는, 곧 자신을 단죄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죠. 이런 무의식적인 공범의식이 복수를 지연하도록 했다는 것이 프로이트식 견해입니다.     

 

반복되는 사도와 햄릿들     


사도와 햄릿은 오이디푸스기를 넘어서지 못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도가 지나치게 엄격한 아비를 둔 까닭이라면, 햄릿은 아버지를 연적으로 여겼던 까닭이지요. 어찌 됐든 두 사람은 아버지로부터 얻어야 할 상징적인 질서와 규범을 익힐 수 없었고, 그것들로 인해 초자아의 형성은 물론이고, 자아의 형성마저도 몹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아와 초자아의 빈곤은 인격의 파탄으로 이어졌죠. 사도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햄릿이 우울장애를 겪게 된 것은 이런 까닭일 것입니다. 

  그럼 사도와 햄릿의 비극은 극히 예외적인 사건일 뿐일까요? 그렇지 않겠죠. 멀게는 그리스 신화나 성경에서부터 ‘스타워즈’ 시리즈나 가깝게는 ‘스카이캐슬’이나 ‘이태원 클라쓰’,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드라마 속 부자지간을 보면 강력한 아버지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기대를 저버린 자식들이 등장하기 마련이죠. 이처럼 사도와 햄릿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스토리를 기획하고자 한다면 초자아가 지나치게 발달한 엄격한 아버지와, 그에게 억압당하는 자식의 구조를 한 번쯤 설정해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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