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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치노트 Feb 11. 2024

엘튼 존, 롤렉스·까르띠에도 '엘튼 존 답게'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기억으로 마약·알코올 빠지기도

1994년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락스타 엘튼 존의 애장품들이 크리스티(Christie`s) 옥션에 올라왔습니다. 2월 9일부터 21일까지 크리스티 뉴욕에서 진행되는 이번 경매에선 엘튼 존의 선글라스와 의류부터 앨범, 액세서리 등으로 컬렉션을 꾸렸습니다.

엘튼 존의 레오파드 데이토나. (사진=Christie`s 캡처)


단연 시계도 올라왔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무대, 패션까지 통통 튀기로 유명한 엘튼 존은 '레오파드 데이토나'로도 알려진 롤렉스(Rolex)의 116598SACO를 착용했습니다. 레퍼런스 넘버때문에 '롤렉스 사코' 라고도 불리죠.


의외로 까르띠에(Cartier) 시계도 한 피스 올라왔는데요, 역시나 베누아 크래쉬(A108446)였습니다. 그것도 1991년 400개만 출시된 한정판 중 하나로요.


엘튼 존이 차던 롤렉스 사코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조금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찼다가 생김새가 '최악'이라며 괜한 욕을 먹은 시계이자, LG트윈스가 우승할 때 MVP에게 주겠다며 초대 구단주인 구본무 선대회장이 1994년에 사뒀다는 시계로도 알려진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 역시도 그동안 구 선대회장이 사온 시계가 롤렉스 사코라고 알고 있었고, 기사에 '레오파드 데이토나로 알려져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시계 업계에선 설마 구 선대회장이 롤렉스 사코를 사왔겠냐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후 구 선대회장이 사온 시계의 사진이 보도되며 '사실은 아주 깔끔한 텐포인트 옐로우 골드 데이데이트였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런 '누가 차겠냐'는 이 시계, 역시 엘튼 존은 소장하고 있었습니다(물론 크리스티는 '전통적인 브랜드의 화려하고 대담한 디자인 때문에 수집가들이 열광한다'고 소개합니다). 한편으론 엘튼 존을 제외하고 누가 이걸 소화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롤렉스 사코는 사실 2004년에야 공식 출시됐지만, 엘튼 존의 롤렉스 사코는 2001년쯤 생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공식 발매 전부터 조금씩 생산이 된 셈이죠. 크리스티 역시 '롤렉스마저도 출시할지 고민했던 이 희귀한 타임피스에 이렇게 2001년까지 일련번호가 새겨진 점이 흥미롭다'고 설명합니다.


레오파드 데이토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롤렉스 사코는 다이얼과 가죽스트랩에 호피무늬를 적용했습니다. 러그엔 48개에 달하는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베젤엔 정사각형으로 커팅한 오렌지 사파이어 36개를 배치해 빛나는 활기를 더했습니다. 인덱스에도 8개 1, 2, 4, 5, 7, 8, 10, 11시 방향에 다이아몬드를 더했고요. 예상 낙찰가는 4만~6만달러 정도입니다.

엘튼 존의 레오파드 데이토나. (사진=Christie`s 캡처)

엘튼 존의 까르띠에 크래쉬는 18k 골드 소재로 약 1991년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400개만 한정 생산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이 중 150번째 시계입니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단순히 엘튼 존이 애장품이라는 점을 넘어, 당시 400개 시계 중 공개된 피스가 몇 안되는 데다 이만큼 상태가 좋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습니다. 예상 낙찰가 역시 7만~10만달러입니다.


크래쉬의 이야기는 사실 워치노트 채널보다는 칸예웨스트 이야기 등과 엮어 기사로 몇 번 다뤘는데, 디자인 기원을 둘러싼 다양한 추측이 있습니다.


일각에선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따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1960년대 까르띠에 런던의 한 매니저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사고와 화재로 찌그러지고 녹은 까르띠에 베누아(알롱제 베누아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크래쉬라는 단어가 당시 영국에서 교통사고를 뜻하는 은어였다는 점에서, '교통사고설'이 사실이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브랜드 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런던 특유의 예술적이면서도 저항적인 감성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라, 크래쉬 특유의 전위적인 디자인에도 잘 어울리고요.


특히 교통사고로 입에 보조장치를 끼고 데뷔곡 'Through the wire'를 녹음한 칸예웨스트가 2019년 오랜만에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낼 때 까르띠에 '크래쉬'를 차고 등장하며 또 다른 스토리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샘플링 원곡인 'Through the fire'를 비틀어 지은 제목인 Through the wire는 '철사 보조장치를 끼고' 정도의 뜻을 담았고요. 실제로 이게 칸예가 맞나 싶은 어눌한 발음이 상당히 재밌습니다.


사실 제가 기억하는 엘튼 존의 명곡은 Rocket Man이나 투팍의 Ghetto Gospel 샘플링 원곡인 Indian Sunset 등도 있지만, 라이온킹의 엔딩곡인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입니다.

엘튼 존. (사진=엘튼 존 공식 홈페이지 캡처)

제가 4살때 저희 집엔 라이온킹 비디오가 있었고, 그 시절 사람들은 이미 몇십 번쯤 본 비디오도 항상 처음 보는 것처럼 되감아 봤습니다. 음악이든 영화든 한번 마음에 들어 소장한 비디오나 테이프를 '내 것'처럼 아꼈고, 영화의 메시지는 가훈이, 영화의 분위기는 가풍이 됐습니다.


이해심 넓지만 무뚝뚝했던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라이온킹을 볼 때뿐만 아니라 언제든 저희와 붙어다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라이온킹의 유일한 대사가 심바가 무파사에게 했던 "아빠, 우리 친구죠?"인 것도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노래는 사랑이 "왕도 방랑자도 최고의 것을 믿게 만든다"고 하지만, 정작 작곡과 작사를 맡은 엘튼 존은 아버지와 그리 가깝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015년 엘튼 존은 옥스퍼드 대학의 한 발표 자리에서 아버지로부터 거부당한 기억 때문에 자신이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엘튼 존의 아버지 스탠리 드와이트는 영국 공군 대위 출신으로 트럼펫터로 활동했습니다. 엘튼 존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10대 초반에 왕립음악원에 들어가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이내 중퇴한 뒤 락앤롤을 비롯한 여러 음악을 들으며 방황과 꿈 사이의 어디쯤 되는 길을 걷습니다.


이후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어머니 실라 해리스,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친아버지의 영향은 이미 그에게 뿌리내렸는지 엘튼 존은 술집 피아니스트 등으로 일하며 음악에 매진했습니다.


1994년엔 애니멀스, 존 레논, 밥 말리 등과 함께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습니다. 당시 엘튼 존의 헌사는 무려 건즈앤로지스의 액슬로즈가 했다고 전해집니다.


엘튼 존의 명과 암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안아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사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에이즈 인권 운동을 이끈 라이언 화이트의 가족 등과 지내면서 엘튼 존은 사랑의 힘을 조금씩 알아가고, 화이트가 세상을 떠난 1990년부터 치료를 받아 재활에 성공합니다. 대리모를 통해 낳은 아이들에겐 '아버지와 다른 아버지'가 되기 위해 매일 사랑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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