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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Apr 04. 2018

엄마와 은유


엄마는 꿈에 자주 등장한다. 꿈이라는 것의 신기한 특징은 깨고 난 직후에는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 조금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 그래서 너무 좋은 꿈을 꾸었을 때는 그 기억을 다시 한번 분명히 상기하는 과정을 거치면 기억에 남길 수 있다. 이런 상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러니까 잊혀져버린 수많은 꿈을 다 포함한다면, 엄마는 거의 매일 내 꿈에 등장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날도 꿈 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꿈 내용은 조금 웃겼다. 정확힌 기억이 안 나지만... 시댁 단체 카톡방에 시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셨는데, 엄마가 그걸 보시고는 화를 내셨다. 재밋는 건,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고 엄마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건 나와 남편만 아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시어머니께 무슨 말을 할 수도 없고 중간에서 참 난감해하고 있었고, 나는 엄마를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돌아가신 엄마가 내 곁에 있다는 그 놀라운 사실을 갑자기 깨닫고 나는 엄마를 붙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를 세게 꼭 안았는데 그 느낌이 정말 살아계실 때 엄마와 포옹하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꿈 속에서 생각했다.


'이 느낌은 진짜야. 이건 정말 엄마느낌이야. 엄마가 아닐 리 없어. 혹시 이게 꿈일 리 없어. 이렇게 생생한데!'


약간 마르고 나긋나긋한 엄마의 몸. 그 몸을 끌어안은 그 촉감과 온기 그대로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내려다보니 따뜻하고 말랑한 작은 몸이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기를 달래느라 가슴에 은유를 올리고 침대에 누웠다가 따뜻한 햇살에 깜빡 잠이 든 것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은유의 사랑스런 온기.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눈물 한 방울이 뚝 흘러내렸다.



엄마는 2016년 10월에 가셨고, 은유의 임신사실을 안 건 2017년 2월이었다. 나의 아이를 누구보다 보고 싶어했던 엄마였다. 예쁜 은유의 모습을 볼 때면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도 아쉽지만, 엄마가 은유를 보내주었다 생각하면 마음의 위로가 되곤 한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자마자 은유를 만나서 한참동안 사랑을 듬뿍 준 후에 ‘이제 우리 딸과 사위에게 가서 사랑스런 아기로 태어나렴.’ 하고 보내주는 장면을 상상한다.



나중에 은유가 외할머니는 어디있어? 하고 물어보면 너는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니가 우리에게 오기 전에 외할머니랑 살았었다고. 널 너무너무 사랑하셨다고.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다고. 그리고 나중에 우리 모두 다 외할머니를 만나러 갈거라고. 그렇게 말해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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