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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un 13. 2019

나쁜 그리움


아이가 아팠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감기를 달고 살긴 했어도 열이 오른 적은 거의 없었는데, 40도를 넘는 고열을 3일간 앓았다. 힘이 들었다. 아픈 아이가 제일 힘들겠지만..



아이가 불덩이 같이 뜨거운 몸을 축 늘어뜨리고 눈만 껌뻑거리는 모습을 보니, 가엽고 무서웠다. 가장 안 좋은 상황이 자꾸 떠올랐다. 이 맘때 아이들은 자주 열이 나고 아프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닌데, 혹시나 심각한 병이면 어쩌지, 지금 내가 적절한 조치를 못 하고 있는 것이면 어쩌지, 초기에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지친 몸 안에 복잡한 걱정거리와 후회가 가득 들어찼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함께 불안 속에 빠져 있어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제는 아이가 열이 조금 떨어지고 기운이 생기니 자꾸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했다. 도무지 말려지지도 않고 날씨도 괜찮아서 유모차에 태워서 공원으로 향했다. 


쨍한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걷자니 힘이 들었다. 허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편의점이라도 들러볼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보이는 곳마다 입구에 계단이 있다. 조금만 참자. 하고 눈을 부릅 떴다.



문득 주위를 보니 날씨가 좋아 그런지 유모차가 많이 보인다. 그런데 유모차를 미는 사람이 모두 할머니다.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왔다.  분들은 실제로 아이의 할머니일수도 있고 베이비시터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 내 눈엔 모두 아이 엄마의 친정엄마로 보였다. 그리고 가상의 그녀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가 아니라, 엄마의 도움이 너무 너무 그리워서 말이다



자취를 할 때, 감기에 걸려 조금 아팠는데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조금 엄살을 떨었다. 사실 그렇게 많이 아픈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엄마는 춘천에서 서울의 자취집으로 순식간에 달려왔다. 그런데 엄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쓰러지다시피 엎드려 구토를 했다. 알고보니 나보다 엄마가 훨씬 더 아픈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엔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 고속철도가 생기기 전이라 시외버스가 가장 빨랐다. 동서울터미널에 내려서 2호선을 타고 홍대입구역까지 오는 동안 세 번인가 중간에 내려 구토를 하며 왔다고 했다. 잠깐 들기에도 무거운 국과 반찬들을 손에 바리바리 들고선. 왜 아프다고 말을 안 했냐고 오히려 화를 내면서도 나는 그렇게 와준 엄마가 너무 좋았다.



그 날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힘들다고 하면 도저히 말릴 수 없는 무모함으로 날 위해 무엇이든 할 것 같았다. 지금 내 옆에 그런 엄마가 있다면, 엄마는 자기 몸 힘든 건 하나도 모르고 나와 내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했을텐데. 난 그런 엄마가 조금 걱정돼서 그러지 말라 하면서도 실은 그 헌신에 의지해서 편히 쉬고 있었겠지.



그런 엄마의 무모한 헌신을 그리워 하는 나의 마음이 우스웠다. 진짜 끝까지, 아니 끝을 넘어서까지 이기적인 딸이구나...



해 주지 못한 것보다 더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딸이라니. 그렇게도 많이 받고 살았으면서. 아이의 엄마는 난데, 아이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건 나인데 그것 마저 엄마에게 짊어지우지 못한 걸 아쉬워하다니. 그게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유라니.



이 그리움은 나쁜 그리움이다.

이 눈물도 마찬가지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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