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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16. 2019

엄마 눈, 엄마 코, 엄마 입.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홀가분하게 운동을 하러 데 전화벨이 울렸다. 엥, 어린이집?


"어머니, 정말 죄송한데 급식모니터링 오늘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갑자기 보고를 해야 해서..."

"아... 오늘요, 근데 그게 뭐죠?"

"급식 점검하는 건데 학기초에 어머니께서 하신다고 신청하셨거든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귀찮게 그런 건 왜 한다고 했는지, 하지만 미안한 목소리에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알겠다고 했다. 같은 직종에 있는 내가 그 곤란함을 모르는 것도 아니..  운동을 하다 중간에 빠져나와 급히 씻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여유롭게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려 했는데, 읽을 책도 골라놨는데...


너무나 청결해서 눈이 부신 주방의 위생상태를 점검했다. 이제 뭘 하면 되냐 물으니 배식을 도와달라 했다. 은유를 만나지 않고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뜻밖의 재회가 반갑기보다 걱정스러웠다. '따라 나온다고 고집부리면 어쩌나...'


하얀 조리사 옷을 입고 멋쩍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열 명의 아이들이 목에 턱받이를 걸고 종종종종 둘러앉아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여운 풍경이 있을까. 그 가운데 가장, 아니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은유야, 엄마 맞아!"

멀뚱한 아이의 표정을 보며 선생님들이 깔깔 웃었다. 식판에 음식을 담느라 바쁜 나를 뚫어져라 본다. 아직 확신이 없는 아이는 와락 안기지 못하고 내 발에 자기 발을 슬며시 대본다. 는 맞닿은 발을 괜히 꼼지락거리며 부지런히 할 일을 했다.


은유를 안으면 다른 아이들이 엄마 생각이 날까 봐 걱정이 됐는데, 때마침 선생님께서 은유 밥 먹는 걸 도와달라 하셨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고개를 젖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웃는다. 이내 몸을 돌려 아기 원숭이처럼 품 안에 파고든다. 갑자기 조그만 손가락이 내 눈을 찔렀다.


"엄마 누운, 엄마 코, 엄마 이이..."


똥그랗게 뜬 눈으로 확인하듯 천천히 내 얼굴을 보며 종알거린다. 눈, 코, 입을 꼭꼭 누르며 배시시 웃는다.


나도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면 그런다. 닿을 듯이 가까이 얼굴을 붙이고 엄마 눈, 엄마 코, 엄마 입... 하나 하나 천천히 만져본다. 나의 의식은 '또 꿈이었구나.'로 끝나고 말지만, 그 마음이 그 마음이겠지. 뜻밖의 만남이 얼마나 반가우면, 얼마나 행복하면, 얼마나 사랑하면...


행복이 이토록 분명한 질량과 부피로 내 곁에 있던 적이 있던가. 아무래도 은유는 엄마가 보내준 것 같다. 저기 어디 천사들이 사는 마을에서 제일 귀여운 놈 하나를 꼬드겨 보낸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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