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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Mar 28. 2019

네가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20대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멀어져 1년에 한 번 다 같이 모일까 말까 하지만, 마치 어제 본 것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어울리는 좋은 친구들이다.


옛날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것이라고 하던데, 막걸리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를 하니 얼마나 신이 나고 재미있던지... 두고 두고 곱씹어도 배를 부여잡고 웃게 되는 수많은 일화들을 하나 하나 꺼내면서 하늘은 어둑어둑 정신은 가물가물 해졌다.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를 지켜보면 참 신기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앞에 두었을 때 그 문을 열까말까 고민하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고 치자. 그래도 처음 가 보는 길이면 머뭇머뭇하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너는 문 열기 전에만 조금 고민하고, 막상 열고 나면 앞으로 성큼성큼 가는거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면 늘 새로운 소식이 있더라."


칭찬으로 한 말이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칭찬으로 들렸다. 남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무뚝뚝한 친구가 모처럼 꺼낸 나에 대한 이야기가 듣기 좋았다. 아이 엄마가 된 후 나 자체에 대한 관심을 받을 일이 별로 없다보니 더 기쁘게 들렸던 것 같다.


그래, 그게 내 장점이다.


나는 나를 잘 믿는 편이다. 무엇을 하든 평균 이상을 할 거라고 예측한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나 목마른 느낌을 가지고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오만방자한 태도가 나의 추진력이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웠다. 나는 안다. 나의 자신감은 99% 엄마가 나에게 준 것임을.


엄마는 내가 무엇을 하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잘 할 거라고. 우리 딸이 누군데,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인데. 부모라면 자식에게 뻔하게 할 법한 이야기들이지만 엄마의 말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정말 그렇게 굳게 믿었다.


우리 집 창고에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그렸던 그림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노랗게 변한 스케치북에는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그린 아주 평범한 아이의 그림이 수 없이 많다. 고3때 그린 입시미술 그림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두었다. 이런 걸 왜 안 버리고 다 모아놨냐고 물으면 엄마는 그랬다.

"우리 딸이 분명히 대단한 사람이 될 테니까, 이런 게 책 같은데 실릴 수도 있잖아."


나는 엄마의 믿음을 먹고 자랐다. 때론 그 믿음이 버거워 힘들기도 했지만, 그 부담조차도 나를 나아가게 했다.


나의 아이가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굳은 생각(혹은 착각)을 딛고 자라났으면 좋겠다. 세상 속에서 좌절하고 비교되어도 나의 진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믿고 성큼성큼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 뒤에 엄마와 같은 모습으로 엄마인 내가 서 있어야지. 말 뿐  아니라 마음으로, 진정으로 아이를 믿어야지. 나는 꼭 엄마를 닮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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