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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Sep 08. 2021

숏컷!

귀밑 3센티 중학생 시절 이후 단발로 머리를 자른 건 29살이었다. 나는 긴 머리의 여자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이후로도 이런 저런 길이의 머리를 해봤지만 절대 고려하지 않았던 길이는 숏컷이었다. 도무지 숏컷을 한 나 자신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예쁜 여자는 아무 머리나 해도 예쁘겠지만 나 같은 그냥 여자는 머리라도 예뻐야지, 숏컷을 했다가 예쁨의 구석이 한 톨도 안 남으면 큰일이니까. 그래선 안 되었다.


숏컷을 하기에 가장 안전한 사람은 중년 여성인 듯하다. 이건 거의 국가 지정이라 할 정도로 흔한, 한 마디로 아줌마 머리. 그래서 어릴  이런 결심 같은 것도 했다. 난 머리 긴 아줌마가 될 거야. 그게 뭔가를 포기하지 않은, 자신을 지키는 여자의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30대 중반의, 아줌마태?가 나기 시작하는 내가 숏컷을 하고 나타나자 왜 '벌써' 머리를 짧게 잘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벌써라니?


머리는 짧을수록 편하고 나에게도 잘 어울렸다. 커트를 할 때마다 점점 짧게 자르다가 최근에 가장 짧은 숏컷을 했다. 단발과 숏컷의 경계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단발에서 숏컷의 영역으로 슬쩍 넘어갔을 때부터 별안간 기대하지 않았던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일상의 태도나 동작 같은 것이 바뀌었다. 앞머리를 곱게 정리하는 게 아니라 뒤로 훅 쓸어넘기게 되고, 걸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을 쭉 펴게 된다. 바람이 불면 머리를 붙잡고 시야를 확보하는 대신, 머리카락 따위 마구 흩날리게 내버려 둔 채 앞만 보고 간다. 그런 태도와 동작이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인 것이다. 일상 속 몸의 미묘한 변화는 내 마음의 태도도 은근하게 변화시켰다.


단지 머리를 잘랐을 뿐인데, 나는 어릴 적부터 버리긴 아깝고 갖고 있기엔 찝찝한 무언가를 휙 내던져버린 기분이 되었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 라는 스스로의 물음 안에는 '내가 어떤 여자인가' 라는 질문이 지나치게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어떤 여자'여야 한다는 명령의 일부가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나간 것이었다. 언제나 나는 여자이고 나이지만, 그 두 가지가 산뜻하게 일치해본 경험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둘 사이가 아주 조금은 가까워졌달까.


앞으로 내 머리카락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 첫 숏컷 전과 후의 나는 다르다. 이런 경험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빨리 해볼걸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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