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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Mar 28. 2024

아이는 자란다

아이는 자란다.

자라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일을 부지런히 해 나간다.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를 타는 아이를 배웅하는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이웃이 놀라며 묻는다. “어머, 너 혼자 학교 가?”


그러게 말이다. 혼자 학교를 가다니. 유치원 등하원은 반드시 보호자가 동행해야 하고, 심지어 매일 서명까지 해야 했는데 학교에 입학하니 가정통신문에 가급적 등하교는 혼자 하도록 지도하라고 쓰여 있었다. 적어도 1년은 데려다주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 에이, 설마… 그래도 다들 데려다주겠지. 하지만 위풍당당한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불과 일주일쯤 되자 이제는 학교에 혼자 가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는 늘 내 마음이 준비되기 전에 자랄 마음을 먹는다.


얼마 전에 학부모공개수업이 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학교에 가는 첫 마음이 설렜다. 아이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을 모습을 빨리 보고 싶었다. 그러나 눈으로 확인한 현장은 기대를 와장창 무너뜨리고 말았다. 산만하다! 그것도 눈에 띄게 산만하다!! 시종일관 즐거운데 집중을 못 한다!!! 너무 황당하여 끝난 뒤 선생님께 평소에도 저런 지 살짝 여쭤봤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나도 남편도 가만히 있는 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편이라 전혀 예상 밖이었다. 더군다나 집에서는 몇 시간이고 책을 읽는 아이인데… 이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유튜브를 금지해야 하나, 남들처럼 학습적 사교육을 시켜야 하나…


심란한 마음을 안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엄마가 학교에 와서 신났을 아이에게 일단 어두운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가짜 웃음을 장착하고 아이를 마주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내 눈을 똑바로 보지도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

“엄마 아까 교실에 갔잖아!”

“네…”

“엄청 반가웠지!”

“네…”


아, 다 아는구나. 그래, 너만한 책가방 매고 혼자 학교에 가는 것만 해도 기특하다고 감탄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느린 아이,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 딴짓하는 아이, 떠드는 아이… 그게 내 아이일 수 있지. 잘하는 건 당연한 일, 부족한 건 말도 안 되는 일, 그건 아니지. 자라면 되지. 늘 그렇듯이 너는 자라겠지.


퇴근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이런다. 걔는 자기랑 달라서 다행이라고. 자기는 어릴 때 너무도 소심하여서 남들이 자기를 보는 게 두려웠단다. 조용한 모범생이었지만 앞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싫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아이가 수업시간에 친구랑 장난을 치더라 하니 심지어 은근 즐거워하는 눈치다. (아니 그건 좀…)


부지런히 자라는 너, 그래서 때론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너, 어쨌든 언제나 그 자체로 기쁨인 너. 늘 어김없이 내가 지고 말지만 그래도 멈추지 말아야지. 나도 못지않게 부지런히 자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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