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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Oct 17. 2022

행복은 중간 그 어디엔가.

어제 먹은 두부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허기진 배에 밥을 밀어넣었다. 간이 심심해서 냉장고에서 두부조림을 꺼내 먹었다. 잠도 깨고 추운 몸도 덥힐 겸 밥을 많이 먹었다. 


가족과 함께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몸이 이상했다. 배가 아픈데 체한 느낌. 아이들을 맡겨두고 집에 돌아와 보니 배탈이 난게 분명했다. 손을 따고 발을 땄다. 7살이 된 서우는 이제 곧잘 엄마의 간호를 돕는다.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일상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둘째를 씻기고, 분리수거를 하고, 저녁도 해야 했다. 배가 아픈 와중에도 해야 할일들이 생각났다. 몸을 일으켜 뭔가 하려고 주섬 거리는데 서우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무것도 안했으면 좋겠어. 지금 아프잖아.'


이제 괜찮아졌다고 서우에게 설명하고 일을 하려는데 서우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아픈데 왜 뭘 하려고 하냐고 울면서 화를 냈다. 도무지 뭘 할 수가 없었고, 와이프가 나머지 집안일을 모두 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거들다 결국 침대에 누웠다. 서우 덕분에 휴식시간을 받은 것이다. 7살 서우는 아빠 속을 뒤집어 놓다가도 이렇게 천사도 감탄할 천사짓을 한다.


인생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어떻게 해야 나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언제나 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제 본 성경 구절이 생각났다.


이 세상에서 헛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가 하면,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 이것을 보고, 나 어찌 헛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허락받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언제나 기쁨이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였을 때에, 그리고 땅 위에서 밤낮 쉬지도 않고 수고하는 사람의 수고를 살펴보았을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서 나는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그 뜻을 찾지 못한다. 혹 지혜 있는 사람이 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도 정말 그 뜻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전도서 8:14~17 / 표준새번역)


일상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앞길이 보이지도 않고, 항상 고민뿐인 삶이지만 내가 믿는 신이 원하는 것은 멀리 보는 것보다 하루를 잘 즐기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아이의 천사짓을 보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게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교회에 붙어있는 말 처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발 밑에 있다는 자모실의 구절처럼.


행복은 너무 영웅적인 삶, 너무 겁쟁이와 같은 삶이 아닌 그 중간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PS. 용감하게 수술실 들어간 우리 서우 사랑해. 이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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