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들은 지팡이로 점자블록을 툭툭 치며 더듬더듬 방향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오직 지팡이 끝에 닿는 블록의 촉감, 그리고 주위의 소리만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들의 세상은 한 줌의 빛도 용납하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일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나는 혹여나 맹인들이 지나는 길에 방해가 될까 길을 슬며시 비켰다. 그러다 문득 저들의 삶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세상이 온통 어둠이라면 어떨까.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인생도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감히 내가 저들의 삶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냥 나라면 어땠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내게 지옥이 있다면 그건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어렸을 때, 종종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상상해 보고는 했다. 그리고 ‘맹인 되어보기’라는 교내 체험 활동도 해봤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은 900냥'이라는 속담이 전해지는 것처럼 ‘눈’은 소중한 것이라는 걸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주고자 했던 것 같다. 단 5초만 암흑 속에 있어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만큼 눈은 너무도 소중하다. 내 눈이 멀어버린다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볼 수 없게 된다. 책도 읽을 수 없고, 맛있는 음식을 눈으로 먹을 수도 없다. 내가 하는 모든 것에 제약이 생기는 것이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갇혀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맹인들은 그걸 이겨내고 그들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나간다. 많은 맹인들은 지팡이를 자신의 눈 삼아 밖을 다니고, 세상으로 나온다. 사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선천적 맹인보다는 후천적 맹인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면, 본디 앞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살 수도 있었을 테지만, 늘 세상을 보며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 앞을 볼 수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울까. 그들도 자신이 맹인이 될지 몰랐을 것이고, 그런 현실을 부정하고 세상을 원망했을 것이다. 좀 더 많이 보고, 아름다운 것을 눈과 마음에 담지 못한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명하기까지 최선을 다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마음에 담고 새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지도 깨달았을 것이다.
출근길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볼 수 있는 내 삶이, 모든 것이 내 눈에 보이는 하루가,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맹인들의 삶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그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볼 수 있음이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늘 감사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지금 이렇게 눈을 뜬 채로 일을 하고, 글을 쓰고, 걷고,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이 곳이, 바로 눈 앞에 있는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