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경제 수준, 사회변화 속도와 정보의 양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때는 가난했고, 그 누구 하나 나서서 챙겨주지 않았다. ‘제 밥그릇은 차고 나온다’, ‘낳아 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부모들이 먹고살기 바빠 한 집에 네, 다섯이 보통인 자녀들을 일일이 챙길 여유조차 없었다. 그 속에서 재능이 그냥 묻히기도 했고,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없이 스스로 꿈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또 배움의 장소는 올곧 학교 하나였고, 선생님의 설명이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전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것은 그때의 아이들은 꿈꿀 시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누구의 간섭과 도움 없이 말이다. 또한, 같이 더불어 놀 기회가 많았다. 그곳이 가정이기도 했고, 때로는 또래와 동네의 선후배이기도 했으며, 학교이기도 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꿈이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만 돌릴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학원만 가지 않을 뿐이지,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름없이 책상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는 어릴 때 못 읽었던 책들을 읽으면서 놓친 어휘를 익혀야 했다. 교과서에서 모르는 단어를 일일이 찾는 일도 어김없이 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였다. 쉴 새 없이 읽고, 찾고, 무언가 하기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끊임없는 엄마의 감시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또 어쩌랴!
시험 기간이 시작될 무렵, 뜬금없이 소설책에 빠져있는 아이를 보면 “너, 제정신이니?” 하며 호통을 쳐댔고, 친척 집이라도 갈라치면 공부 시간을 최대한 뺏기지 않도록 시간 계획을 짜서 보냈다. 거기다 노는 시간, 컴퓨터 하는 시간까지 일일이 부모의 허락 없이 되는 일이 없으니, 그 속에서 아이가 언제 자유롭게 꿈꿀 수 있겠는가?
배움이라는 것이 꼭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있는 게 아닌 것을, 늘 지식을 쌓는 데만 초점을 맞춰 아이가 책상반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손에서 잠시라도 책을 내려놓으면 큰일인 것처럼 아이를 닦달하고 몰아세우기는 여느 부모와 매한가지였다.
그런 아이에게 꿈을 묻는다고 질책하거나, 그 문제는 네 문제니 알아서 하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꿈 찾아 나서는 아이들
독일 아이들은 재능과 소질을 일찍부터 찾아 나선다. 성적으로 초등학교 4학년에서 선긋기를 끝낸 후, 실업계 학교에 다니는 6,70%의 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을 목표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해당기술을 익히고, 인문계 학교에 다니는 3,40%의 학생들은 대학교육을 위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의 직업 선택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대학교를 꼭 가야한다고 어릴 적부터 강요하지 않는다. 천천히 아이가 본인의 적성과 소질을 찾도록 지켜보고 격려한다. 사회적 시스템도 그런 학생들의 탐색활동을 지지한다.
그런 일례로, 김나지움 저학년 때에는 1년에 하루 정도 직업탐색을 목적으로 대학탐방 내지는 관심 있는 일터를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자신의 적성을 고민해 볼 수 있다.
아는 독일 친구의 딸아이는 화학자를 꿈꾸고 있다. 김나지움 5학년 때 대학교의 화학 실험 수업을 신청하여 참관수업을 받았다. 그곳에서 대학생이 되면 어떤 실험을 하는지를 직접 보고 경험하며 이 길이 자기에게 맞는 지를 확인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김나지움 고학년에서는 1년을 진로탐색을 목적으로 휴학할 수 있다. 이 기간을 이용해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고, 직업체험을 할 수도 있으며, 대학의 관심 있는 학과 강의를 직접 들을 수도 있다. 또한 아비투어를 마치고 ‘자발적 사회봉사의 해(Freiwillige Soziale Jahr)’를 가질 수도 있다. 자발적 사회봉사란 16세부터 27세까지의 청소년이 6~18개월 동안 사회봉사기관이나 단체에서 용돈 정도의 보수를 받고 도우미로 일하며 직업의 세계를 경험하는 과정이다. 이런 시도와 노력을 통해 학생들은 본인의 적성과 소질을 찾아가며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간다.
학문 교육(3,40%)과 직업교육(6,70%)을 두 축으로 하되, 개인의 능력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동체의 발전을 꾀하는, 그래서 개인과 사회를 강하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 학교에서 친구를 비교와 경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석차를 내지 않으며, 초등학교 때부터 낙제와 유급제도를 통해 기초학력미달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나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직업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당당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는 나라, 그곳이 바로 독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