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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Aug 17. 2019

안전보장 ‘이 사회’

이사하며 받은 열쇠 한뭉치     

독일에서 이사하면 한 뭉치 받는 것이 있다. 바로 열쇠 꾸러미이다. 집 열쇠는 물론 전체가구가 함께 이용하는 공용 출입문 열쇠, 정원열쇠, 지하실과 다락방 창고 열쇠, 우체통 열쇠까지.     

열쇠가 있어도 쓰임새가 적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열쇠 없이 공용장소를 드나들 수가 없다. 어디든 늘 잠금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원출입문의 예를 들어 보자. 정원에는 자그마한 놀이터와 공용 빨래대가 있다. 아이들을 그곳에서 잠깐 놀게 하기 위해, 또는 빨래를 널려면 정원출입문 열쇠를 함께 들고 나서야 한다. 깔끔한 성격탓에 지하창고에 자전거를 넣을라 치면 이 역시 창고열쇠가 있어야 한다. 우체통은 또 어떠랴! 우편물 역시 열쇠가 있어야 꺼낼 수 있다. 사생활 노출 걱정 없어 좋기도 하지만 여간 번잡스러운 일이 아니다.(집배원들에게는 업무상 집집마다의 우체통 열쇠가 모두 부여된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공동출입문 안쪽에서의 안전잠금 장치이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안쪽에서 한번 더 잠금장치를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 중 누가 늦게 오기라도 하면 출입문까지 내려가 문을 열어줘야 한다. 입주민들이 서로서로 밤 경비를 서는 셈이다.     

이런 잠금 문화에 익숙지 않은 나는 자물쇠로 열고 잠그는 일이 너무 귀찮았다. ‘낮인데 어때?’, ‘내 뒤에 누군가 또 드나들 텐데’하는 생각에 이 일을 소홀히 하면, 함께 사는 독일 할머니들의 잔소리가 여지없이 날아온다.     

“프라우 백, 일 끝났으면 문 꼭 잠그고 나오세요.”

“프라우 백, 지금은 문 잠그는 시간대예요.”     

독일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공용출입문을 함부로 열어주지 않는다. 공용출입문에는 12가구의 주인 이름과 함께 가구별 벨이 부착되어 있다. 손님은 자기가 찾는 사람 이름 옆에 부착된 벨을 누르면 된다. 하지만 약속 없이 찾아온 경우는 낯선 사람이나 잡상인으로 여겨 벨을 눌러도 절대 열어주지 않는다.      

이런 안전관리는 일반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청을 포함한 관공서, 대학, 연구기관의 직원들은 작지만 개인 방을 대체로 갖고 있다. 그들은 자기 사무실을 비울 때,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조차도 문을 잠그고 다닌다. 자기가 갖고 있는 정보가 타인에게 노출되거나, 털리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이런 사소한 일이 귀찮을 것 같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이미 습관이고 생활이다.     

    

안전보장 이 사회’      

독일인들의 유별난 안전 의식은 ‘뭐 저렇게까지…’할 정도로 강박증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안전 불감증으로 사고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바람직한 건 자명하다.     

이들의 철저함은 생활 곳곳에서 쉽게 엿볼 수 있는데, 육아부분에서 특히 도드라진다.     

독일인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보통 1년간은 자녀들을 매일 교실까지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일을 반복한다. 설사 5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라도 말이다. 가끔 이 역할을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하는 부모도 있다.     

솔직히 나는 이런 일이 귀찮았다. 하지만 안할 수도 없었다. 독일의 신학기는 8월말에 시작되고 학교 수업은 아침 8시부터이다. 이 시기는 유독 흐린 날이 많고 이른 아침부터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경우도 잦다.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아이 혼자 학교에 가게 하기가 불안했다. 하교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이라고 무슨 해코지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 때문에 등교는 2년, 하교는 꼬박 4년간 아이와 함께 했다.     

놀 때도 마찬가지다. 독일 부모들은 아이들끼리만 놀게 하지 않는다. 공원이나 놀이터를 봐도 보호자 없이 혼자 와서 노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놀 때도 보호자가 집에 있어야 한다. 또 노는 친구 집이 아무리 코앞이라도 부모가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야 한다. 이를 상식으로 여긴다.(물론 이 경우는 초등학생 정도까지만 해당한다.) 독일 부모들 모두 이런 식이기 때문에 외국인인 나도 매우 번거롭지만 그들 문화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집에 아이들만 있게 하지도 않는다. 이 또한 신고 대상이다.      

안전에 대한 강박관념은 롤러스케이트와 안전띠 착용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한참 아이들 사이에 롤러스케이트 붐이 일었다. 아이들에게 벼룩시장에서 롤러스케이트 두 벌을 사줬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벽을 붙잡고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타는 법을 배워갔다. 그런데 큰 아이 친구 한나는 시에서 운영하는 안전교실에 등록해 교육을 받은 후 타는 것이 아닌가!     

자동차 안전띠 착용도 유난하다. 뒷자리에 앉는 사람까지도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돼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다. 키가 작은 어린이는 자가용 보조의자도 함께 이용해야 한다.     

또 자전거 탈 때는 어떠랴! 유치원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든 사람이 헬멧을 쓰고 탄다. 이런 모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점잖은 분이 양복에 헬멧까지 쓰고 자전거를 타는 게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른이 되어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어릴 때 받은 교육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화된 행동은, 작은 것에서부터 안전을 철저히 지켜가는 그들의 국민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떤 엄마는 아이들 놀이터 모래의 위생상태를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1년에 한번, 시에서 모래검사를 통해 기생충 여부를 확인하고 깨끗한 모래로 교체해 준다.      

이래저래 생활 곳곳이 안전에 대한 염려로 똘똘 뭉쳐있는 곳, 그곳이 바로 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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