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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피어 오른 꽃 Feb 02. 2024

생일 축하를 받다가 쓰러졌다.

저질체력의 회사생활 해내기


'힘들어서 회사는 다니겠니?'

어릴 때부터 작은 체구에 약했던 체력으로 내가 자주 듣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몸을 가진 사람들도 체력/건강 문제로 왕왕 포기하는 것이 회사생활이니 말이다.

회사생활은 '내 시간적 자유와 돈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고정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회사는 가야 하고, 적어도 주 40시간은 꼼짝없이 회사에 바치는 시간으로 묶여있다.  회사원은 그 시간을 버틸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어떠한 병을 앓아온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다섯 살 때부터 자꾸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증상이 생겨, 응급실 행도, 병원의 정밀 검사도 여러 번 거치며 부모님의 염려 속에 자라왔다. 원인은 '미주신경성 실신'. 

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 증상이 예민한 나에게는 조금 더 일찍 꽤 잦은 빈도로 찾아왔다.


첫 회사는 업무 강도가 높기로 꽤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취업난과 높은 경쟁을 뚫고 들어간 회사이니만큼 '신입의 패기로 무엇이든 이겨내 보리!' 다짐하며 아침 7시 출근 저녁 9시 이후 퇴근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그러던 중, 조직 내 상급자들이 실적 책임으로 경질되고, 갑작스럽게 저연차인 내가 과중한 업무들을 떠안게 되면서, 부담감과 압박감이 말할 수 없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무리가 된 나는 다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쓰러지고, 반복된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공황장애'라는 것이 생겼다. 그렇게 어느덧 '공황장애'10여 년간 함께하고 있다.

  



이런 내가 직장생활 15년 차를 넘기고 있다.

그것도 빠르게 돌아가는 IT 업계에서.

그간 오르락 내리락과 위기들이 있었지만, 잘 거쳐왔다고 반추해 본다.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고, 나만의 루틴이 생기고, 기준이 생긴 덕일 거다.

가까운 친구들도 모르는 나만의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15년간 돈벌이를 하게 해 준 가장 큰 재산 중 하나이다.  

몇 해 전 생일 식사 자리.

친구가 마련해 준 소중한 자리에서 나는 '맛있다!'를 연발하며 음식과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시야가 흐려지며 혈관이 수축되는 느낌이 싸하게 들었다.

순간 '공황일까, 미주신경성 실신일까?' 헷갈렸고, 친구 앞에서 쓰러질지 모르니 얼른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깨어나보니 바닥이었다.

또다시 쓰러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얼마 먹지도 못하고 쓰러진 것이 억울하다.

이 일을 계기로 그간 체력을 키우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해 왔던 모든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에 가는 도중 쓰러지면 어쩌지? 회사에서 일을 하다 쓰러지면 어쩌지?'

사소한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떠올리며 그 조차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나의 모습이 그려져 두려움이 몰려왔다.

쓰러짐과 동시에 잘 다스려왔던 공황장애도 다시 심해진 것이다.


'이대로는 안된다. 나를 회복시켜야 한다. 지금 무너지면 나는 내 의지나 불가피한 이유가 아닌 체력의 문제로 포기하는 사람이 된다.'

나의 체력과 마음을 단단하게 세워보리라.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듯 나는 여전히 자랑할만한 체력과 건강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남들에 비해 제한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도, 내 몫을 못해내고 있지도 않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면, 위기에도 다시 일어나고 회복해 내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얼마 전 '블라인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았다.

'출근만 해도 힘이 들어 일할 기운이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역시나 익명 커뮤니티인 만큼 '너는 도대체 어떻게 뽑혔냐, 넌 그러고도 놀러는 다니지? 학교는 어떻게 다녔냐?' 등등의 비난 댓글도 많았지만, 나는 그 글에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황장애가 심했던 시절 나는 지하철 한 정거장을 못 가 포기해서 내리고(요즘도 종종 그렇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있는 시간 동안 땀을 줄줄 흘려대며 진을 뺐다.

그렇게 회사에 겨우 도착하고 나면 힘이 빠지고 손발이 떨려 일에 집중이나 됐겠는가.


많은 사람이 각자의 약한 부분들로 인해 밥벌이를 해나가는데 힘에 부치고 있을 것이다. 타고난 체력이 약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혹은 예기치 못하게 약해지는 곳들이 생길 수도 있다. 몸은 괜찮지만 마음이 무너진 사람도 있다. 저마다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짧지 않은 기간 체력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극복방안을 시도해 가며 회사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나의 경험치가 누군가에는 조그마한 힘이 되길 바라본다.

"약하니 알아줘."가 아닌, 나의 약한 부분을 알고 잘 다루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내보자는 얘기들로 채워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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